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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인 칼럼]신뢰받는 사법부의 정착을 위하여

2020년 12월 1일

[전성인 칼럼] 신뢰받는 사법부의 정착을 위하여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경향신문 오피니언 : 원문링크는 글 하단에 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먼저 <프로듀서 101> 순위조작 사건에 대해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지난 11월18일 안준영 PD와 김용범 CP에게 원심과 동일한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이례적으로 두 가지를 덧붙였다. 하나는 억울하게 탈락한 12명의 피해 연습생 명단을 공개한 것이다.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잘한 일이다. 다른 하나는 소위 혜택을 본 연습생은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것도 잘한 일이다. 필자는 과거 ‘아이즈원을 위한 변명’이라는 칼럼을 통해 피해 연습생뿐만 아니라 아이즈원 멤버 모두가 실질적인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했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30일, 바로 그 정준영 판사가 재판장을 맡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이 있었다. 보도에 의하면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12월3일 준법감시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전문심리위원단 의견서를 받고 7일 법정에서 이들의 의견을 직접 듣는다. 걱정이다.

이 재판에서는 정준영 판사가 두 가지 잘못을 범했다. 하나는 스스로 말을 바꾼 점이다. 정 판사는 당초 준법감시조직의 신설이 재판과는 무관하다고 한 후, 나중에 이를 양형에 반영할 수도 있다는 취지로 그 발언을 번복했다. 다른 하나는 기업의 양형에 적용되는 미국 연방양형기준을 엉뚱하게도 총수의 양형에 적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번 전문심리위원단의 의견서는 그런 잘못된 판단을 계속 확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편법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 판사는 본인의 선택이 사법부의 신뢰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명심해서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다.

론스타의 마이클 톰슨이 ISDS(투자자-국가분쟁) 소송과 관련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게 공식적으로 협상을 제안했다. 9700억원에 딜을 하자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 제안을 약 2주일 동안 끼고 있다가 법무부에 이첩했다. 당연히 시민사회가 반대했고, 30일 법무부는 론스타의 공식제안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제안을 거부했다. 그래도 찜찜하다. 또 무슨 사고를 치지는 않을까?

한진칼의 아시아나 인수에 대한 법원의 판단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11월2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이승련 수석부장판사)는 한진칼이 아시아나 인수 명목으로 산업은행에만 신주를 배정하는 제3자 배정 방식의 신주 공모가 위법하다며 3자연합이 제기한 가처분 사건을 심문했다. 신주 납입기일이 12월2일이므로 그 결정은 늦어도 1일에는 나올 것이다. 나는 이번 거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법원은 제3자 배정 방식의 신주 발행을 금지해야 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진칼에는 신기술 도입의 필요성도, 긴급한 재무구조 개선 필요성도 없다. 즉 상법과 정관이 허용하는 사유가 없다. 둘째, 산업은행은 한진칼의 경영권 분쟁에 부당하게 개입했다. 산업은행이 뭐라고 하건 이미 조원태 회장은 지난 11월24일 산업은행을 자신의 특별관계자로 명기하여 공시했다. 같은 편이라는 것이다.

셋째, 산업은행이 아시아나의 매각을 도우려면 아시아나의 채무부담을 줄여 주거나, 아시아나를 인수하는 당사자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이번 거래에서 그동안 아시아나 경영에 개입했던 채권단은 조금의 손실분담도 하지 않았다. 또한 산업은행은 직접적 인수자인 대한항공에 자금을 지원하지 않고 그 모회사인 한진칼에 자금을 지원했다.

넷째, 산업은행과 금융위는 이 거래가 무산되면 마치 항공산업이 결딴나는 것처럼 우리 사회를 협박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항공산업이 어려운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이유는 여러가지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이 유일한 방법인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채권단의 손실분담이다. 독과점체제를 구축하는 것보다 채무 재조정이 더욱 자명하고 시급한 과제다.

그러나 한국 사회를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것은 누가 뭐래도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배제와 징계 요구 문제다. 추미애 장관의 이 결정은 잘못된 것이다. 내용도 실체가 없고, 절차도 위법하기 때문이다. 추 장관이 밝힌 6가지 혐의 중 그나마 처음에 국민들의 관심을 끈 것은 소위 ‘판사 불법 사찰’ 관련 혐의였다. 이것은 사실이라면 중대한 문제다. 그러나 문건이 공개된 현재, 유일하게 남은 논점은 ‘검사가 왜 판사의 성향을 정리하는가’ 정도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주지법의 장창국 부장판사는 어떤 경우에도 판사에 대한 정보수집은 금지돼야 한다는 취지로 글을 올렸다. 나는 반대한다. 왜냐하면 판사는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고 따라서 민주사회에서는 당연히 감시 대상이기 때문이다. 사찰을 통해 판사의 재판에 부당하게 영향을 끼치거나, 이권을 통해 판사의 재판을 왜곡하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이것을 달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판사의 정보를 어둠 속에 감추는 것이 아니라 판사에 대한 정보를 노출하고 끊임없이 감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블랙 대법관이 명언을 남겼다. 사법제도의 신뢰성을 제고한다는 명분으로 법관의 정보를 까발리는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사법부에 대한 분노, 의심, 경멸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준영 판사의 이재용 부회장 재판을 보면서 필자는 사법부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이제 한진칼에 대한 민사합의부 결정과 윤석열 총장에 대한 행정법원 결정이 또 하나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법원이 신뢰성을 제고할지 아니면 ‘역시’라는 경멸만을 재생산할지 지켜보자.

출처 및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2010300025&code=990100#csidx6ee42a15337794a8c5f81496f7b7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