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공감과 연대

[기고문]법치주의는 정치와 권력의 한계이다(권경애)

2020년 11월 30일

법치주의는 정치와 권력의 한계이다

 

[기고] 권경애 법무법인 해미르 변호사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을 징계절차에 회부하고 직무를 정지시켰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다. 징계가 발표된 다음 날인 25일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잘못한 일이라는 56.3%가 잘한 일이라는 38.8%의 결과보다 앞섰다. 여론은 부정적이다.

일각에서는 “누가 이기든 상관없는 추미애와 윤석열의 권력다툼”이라고 치부하며 일 년 가까이 지속하는 극한 대립의 본질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징계회부와 직무정지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어긋난 처분이라는 법률가와 검사들의 반발에는 “정치가 실종하고 Juristenstaat(법률가국가)가 되었다”는 평을 붙여 비난한다. 법률가들의 입에서는 “법치가 실종하고 정치가 판을 친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이 사태는 “문재인 정부와 집권세력이 합법의 외피를 두르고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침해한 정적 제거술을 단행하면서, 선출된 합법적 독재자의 길로 들어선 분명한 신호탄”이다.

법치주의는 권력의 한계이다. 법치주의는 권력의 범위와 행사방법을 법에 따라 행사하라는 원칙이다. 법치주의는 남용의 욕망을 내포하고 있는 권력을 제어해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지킨다.

법치주의는 정치의 한계이기도 하다. 정치세력 또는 정치인의 주된 동기가 가치에 대한 신념이든 명예나 이권 취득이든 그들은 권력획득 경쟁을 주업으로 한다. 법치주의는 정치세력 간의 경쟁도 헌법과 법률과 세세한 규정에 따라야 한다는 명령이다. 법치주의는 정치가 상대를 말살하고 없애는 전쟁이 되지 않도록 통제하는 헌법 원리이다.

민주주의의 내용에는 다수결의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는 형식적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다수에 반대하는 소수의 의견도 보호되고 다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실질적 민주주의도 포함된다. 정치권력이 권력유지를 위해 방해자들을 제거하고 경쟁의 장에서 몰아내야겠다는 유혹에 굴복할 때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위협 받는다. 군사독재정권이나 일당독재의 전체주의 국가가 아닌 한, 현대적 헌법을 갖춘 국가에서는 고문이나 용공조작의 방식으로 반대자와 정적을 제거하지 않는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저자들은 민주주의의 외형을 유지하며 그 본질을 허물어뜨리는 것을 선출된 합법적 독재자의 기술이라고 했다. 심판매수, 행정명령 등 룰(rule) 변경 등의 기술을 사용한다.

추미애 장관은 취임 후 일주일 후에 법무부에 징계절차를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11월 24일 징계회부와 직무정치는 예정된 수순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징계심의위원회를 12월 2일에 열기로 하고, 감찰위원회는 12월 10일에 열겠다고 통보했다. 추미애 장관이 얼마 전에 징계절차 전에 법무부 감찰위원회를 열도록 한 감찰규정 상의 의무규정을 감찰위원회에 통보도 없이 임의규정으로 바꾸어 둔 것이다.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가 총선에 개입하려는 ‘검언유착’의 강요미수죄를 저질렀다는 믿을 수 없는 제보자X의 단 한마디를 근거로 감찰을 지시하였으나, 법무부는 수사에 개입할 목적으로 검찰청 공무원에 대해 감찰할 수 없다. 추미애 장관은 한동훈 검사를 법원연수원으로 발령 내서 법무부 감찰 대상으로 만들었다. 검찰총장은 한동훈 수사에 대해 보고 받지 말라는 지휘권도 발동했다. 한동훈 검사 인사에 대한 검찰총장의 의견제시권 규정이나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을 통해서만 지휘할 수 있다는 검찰청법은 무시되었다. 검찰총장 징계사유는 이러한 무법적 상태에서 축적된 것들이다.

징계회부 발표 전후의 무법상태도 심각하다. “불법적 판사사찰”이라는 충격적 사유를 6가지 징계사유에 포함시켰으나, 정작 “사찰”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성 모 검사 당사자에 대한 사전 감찰조사는커녕 한마디 확인과정조차 없었다. 감찰대상자인 윤석열 총장의 소명 기회가 부여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추 장관의 발표 다음 날 25일 오전에 대검 감찰부는 해당 검사의 수사정보담당관실을 압수수색했다. 행정절차인 감찰과 사법절차인 강제수사가 같은 대검 감찰부에서 행해졌다. 대검 감찰부가 법무부와 긴밀한 연락 하에 지시를 받은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청법 제8조에 따라 법무부장관은 조남관 검찰총장 대행을 통해서만 구체적 사건에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다.

불법사찰은 정보의 직무범위성 여부, 정보수집의 부당한 목적 및 지속성 여부, 정보수집 방법의 위법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감찰과정에서 이러한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단 잡아넣고 증거 만들어 간첩 만드는 공안수사 방식과 다를 바 없지만, 사후 압수수색을 통해서도 정보수집의 불법성을 입증할 증거는 현재까지는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장관이 이미 선정해 놓은 위원들에 의해 징계위원회는 12월 2일에 해임이나 파면을 결정하고, 대통령은 그 후 징계위원회의 결정대로 처리할 것이다. 검찰총장의 임기는 2년이다. 헌법학에서 임기제도는 권력분산과 권력견제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원리에서 도출되는 제도로 이해한다. 법이 보장하는 총장의 임기는 합법적인 외피를 갖추고 불법적으로 단축된다. 정권핵심인사와 정권비리에 죽은 정권과 산 정권에 동일한 잣대를 들이댄 검찰총장은 ‘검찰개혁’의 명분 하에 합법적으로 제거되는 것이다. 집권여당은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의 법제화에 반대한 바 없는 검찰총장의 제거를 위해 ‘검찰개혁’이라는 진보적 의제를 오염시키고 쓰레기로 만들었다.

강조하건대 ‘적법절차’는 권력행사의 한계이고 법치주의의 명령이다. 권력유지와 정적제거의 목적을 위해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기 시작한 권력은 자신의 반대자와 정적 누구든 같은 방식으로 제거할 수 있다.

 

 

출처 및 원문 : https://bit.ly/2HQgieN(뉴스플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