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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인의 경제노트]191031_구조적 비리인가 권력형 부패인가

2019년 10월 31일

[전성인의 경제노트]-경향신문 오피니언

구조적 비리인가 권력형 부패인가

최근 ​골든브릿지증권(현 상상인증권)의 대주주 변경과 관련한 잠재적 문제점이 연일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언론이 제기하는 의혹은 대략 다음과 같다.​

각종 차명거래와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유모씨가 골든브릿지증권을 인수하겠다고 금융감독 당국에 승인을 신청했는데, 검찰이 무혐의 의견을 표명했기 때문에 석연치 않게 인수 승인이 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문제를 제기한 언론은 검찰 출신의 전관 변호사를 매개로 한 ‘금융재벌과 검찰 간의 유착관계’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골든브릿지증권이나 이를 인수한 상상인그룹은 낯선 이름이다. 금융을 전공하는 나 역시 상상인저축은행과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이라는 이름을 지난여름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이 낯선 이름의 저축은행들이 세간의 이목을 받기 시작한 계기는 이들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모펀드 불법투자 의혹과 맞물리면서부터이다.​

조 전 장관의 배우자인 정모 교수가 차명 투자한 회사로 거론되고 있는 더블유에프엠(WFM)에 상상인저축은행과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의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상상인저축은행은 2019년 6월 코링크PE에 20억원을 대출해 주었다가 이를 회수했고,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은 2019년 8월경에 다시 코링크 PE가 보유한 WFM 주식 110만주를 담보로 20억원을 대출해 주었다. 특히 지난 8월의 대출은 조 전 장관의 사모펀드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할 때여서 이 대출은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이들 대출은 모두 골든브릿지증권 인수 이후에 발생한 사건들이다. 따라서 이들 사건만으로 골든브릿지증권 인수와 ‘검은 구조’ 간의 유착관계를 추론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들 사건이 상상인그룹 내의 두 저축은행과 그 지배자를 세간의 인식에 각인시키는 데 기여했을 뿐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그리고 그것은 “금융재벌과 검찰 간의 검은 유착”이라는 초점과는 핀트가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조국 사태가 본격화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회사는 WFM이었다. 이 회사는 공식적으로는 사모펀드 의혹의 범위 밖에 있는 회사였다. 그러다가 정 교수가 이 회사에서 자문료 명목으로 1400만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로소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특히 다른 회사와는 달리 상장회사였기 때문에 그래도 비교적 회사의 자금 거래와 관련한 내용을 파악하기 쉬웠다는 현실적 장점도 크게 작용했다.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은 여기에 다시 한 번 등장한다.​

2018년 WFM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이 회사의 자산인 갤러리아포레에 대한 근질권 및 질권 설정 내역이 나온다.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이 엣온파트너스가 설정한 근질권에 대해 질권을 130억원 설정하였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엣온파트너스는 WFM이 발행한 전환사채를 매입한 곳이다. 그럼 어떤 거래가 이와 같은 자금 기록을 남길 수 있을까?​

일단 130억원의 질권 설정부터 생각해 보자. 질권 설정 대출이란 쉽게 말하면 담보대출이다. 대출을 내주면서 불안하니까 담보로 잡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기관은 통상 대출 나간 액수보다 담보권을 높게 설정한다. 그 비율이 30% 정도다. 따라서 130억원의 질권 계약이 있고, 그 설정자가 금융기관이란 의미는 아마도 100억원 정도의 대출이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으로부터 엣온파트너스로 나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럼 당연히 담보는 엣온파트너스가 보유한 자산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여 WFM이 보유한 갤러리아포레가 궁극적인 담보자산이 되었을까? 아마도 엣온파트너스가 전환사채 매입의 형태로 WFM에 투자한 돈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엣온파트너스는 겉으로 드러난 WFM 전환사채 매입 외에 이면계약을 통해 이 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잡고 이를 근거로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렸을 수 있다. 또는 조금 더 상상력을 가동하면 엣온파트너스는 중간 매개자 역할만 하고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이 갤러리아포레를 담보로 WFM에 투자한 실질적인 전주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중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자유한국당 김종석 의원은 지난 10월5일 정무위 국정감사 질의에서 “(상상인그룹이) WFM에 100억원을 투자한 후 지난 2월 (골든브릿지증권) 대주주 자격을 얻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주장이 사실인지는 아직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만일 사실이라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상상인그룹이 골든브릿지증권을 인수할 수 있었던 핵심적 이유는 ‘금융재벌과 검찰 간의 검은 유착관계’ 때문이 아니라, ‘상상인그룹이 WFM에 돈을 투자’해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자라면 ‘해묵은 유착 구조’가 문제겠지만, 후자라면 누가 금융감독 당국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대주주 변경 승인이 나게 했는가라는 ‘권력형 비리’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골든브릿지증권의 대주주 변경이 실질적으로 승인된 때는 지난 2월27일에 있었던 증권선물위원회 제4차 회의에서였다. 이 의사록의 제7~9쪽에는 여러 장황한 발언을 통해 결론을 승인 쪽으로 유도하는 한 위원의 발언이 나온다. 나는 이 의사록을 읽으면서 과연 이 위원이 누구일까 내심 궁금했다. 그런데 검찰과 금융재벌의 유착을 보도한 언론의 자막을 보니 “김○○” 위원이라는 표기가 나왔다. 이날 회의에 출석한 증선위원은 총 5명이고 그중 김씨 성을 가진 위원은 단 두 명이었다. 그 두 명은 모두 금융위 공무원이었다.​

이제 독자들이 자문할 때가 되었다. 과연 검찰이, 또는 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가 검찰을 움직이는 데 더해서 금융위 공무원까지 좌지우지해서 금감원의 우려 표명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 많은 변경 승인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아니면 검찰과 금융위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곳에서 “강력한 의사 표시”가 있었기 때문일까?​

여기서 구조적 비리와 권력형 부패는 갈림길을 탄다. 어느 경우건 진상이 중요하다. 누가 그 진상을 밝힐 수 있을 것인가?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조사할 수 있는 권능은 오직 대통령만 가지고 있다.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

 

[출처 및 기사 원문]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0312040015&code=990100#csidxe658053d19d01ff909dc95544e33a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