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 속으로
오민규 ‘플랫폼노동희망찾기’ 활동가
·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플랫폼 노동자에게 권리를!
플랫폼 기업에 사용자 책임을!”
인터뷰·정리 임용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노동의 비정규화가 유연화의 20세기 말 화법이라면, 노동의 탈노동자화는 유연화의 21세기 초 화법이다.”1)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자동화 기술의 도입은 복잡한 인간 노동을 빠르게 대체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의 전 세계적인 확산 역시 (중략)
어느덧 우리는 인공지능 기술에 기반한 ‘플랫폼 전성시대’를 살고 있다. 굴지의 대기업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플랫폼 비즈니스에 뛰어들어 제조·유통·소비 시장을 장악했고 그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플랫폼 자본이 ‘혁신’과 ‘효율’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가운데, 노동권이 작동하지 않는 플랫폼 노동의 문제도 최근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플랫폼 경제의 출현과 성장이 노동유연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로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이뤄지던 전일제 8시간 노동은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한 주문형·호출형 노동으로 대체되었다.
플랫폼 시장은 나날이 커져만 가는데, 어째서 플랫폼 노동자들의 지위는 이렇게 불안정해진 걸까. 플랫폼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과 사회적 연대를 모색 중인 ‘플랫폼노동희망찾기’ 활동가 오민규 동지를 지난 4월 15일에 만났다.
플랫폼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요구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21년 플랫폼 종사자 규모와 근무 실태’에 따르면, 지난해 플랫폼 노동 종사자 수는 220만 명에 달한다. 정부가 추산한 220만 명 가운데 ‘광의(넓은 의미)의 플랫폼’(구인·구직 서비스 등 노무 제공 매개 플랫폼) 노동자는 약 154만 명, ‘협의(좁은 의미)의 플랫폼’(배달·배송·모빌리티·가사 등 사용자형 플랫폼) 노동자는 66만 명가량이었다. 이 중 좁은 의미의 플랫폼 노동자는 전년도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배달·배송·모빌리티·가사 노동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건설, 화물운송, 학습지, 웹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이 생겨난 결과이다. 그렇지만 이들 대다수는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법 배제의 근거도 이해하기 어렵다. 과거와 동일한 내용의 노동을 수행하는데도 단지 플랫폼이라는 전자적 매체를 경유했다는 게 주된 이유이기 때문이다.
플랫폼노동희망찾기는 대리운전·퀵서비스 기사, 배달 라이더, 웹툰작가 등 플랫폼 노동 당사자들이 결성한 노동조합들과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모여 준비한 단체로 올 초 공식 출범했다. 2월 16일 플랫폼노동희망찾기는 20대 대선 요구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발표한 플랫폼 노동자 5대 요구안은 다음과 같다.
△ 플랫폼 노동자 권리 보장과 사용자 책임 부여
△ 안전운임제 등 플랫폼 노동자 생활임금 보장 △ 알고리즘 설명 및 교섭 제도화 △ 사회안전망 및 사회보험 적용 △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적용 등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 |
플랫폼 기업이 일감만 중개한다고?
두루 알려져 있다시피 플랫폼 노동이란 모바일 앱이나 SNS 등 온라인 플랫폼을 매개로 수행하는 노동을 일컫는다. 이러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하여 일감을 얻는 사람을 통상 플랫폼 노동자라고 한다. 하지만 플랫폼 노동 혹은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개념과 법적 지위는 아직 국내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노동자 개념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최근 플랫폼 산업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두었음에도, 명백히 플랫폼 산업의 경제주체인 플랫폼 노동자와 사용자에 대한 노동법상 규율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플랫폼 노동은 전통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아닌 독립사업자 고용형태를 취한다. 그런데 플랫폼을 통해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누가 일을 시키는지, 누가 나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지 모호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애초 플랫폼 자본이 ‘플랫폼 노동’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노동형태를 통해 노동자성을 지우고 사용자 책임마저 잔뜩 헝클어뜨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랫폼노동희망찾기는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법상 노동자로 추정하고, 플랫폼 기업이 이를 부인할 경우 그에 대한 입증은 사용자인 플랫폼 기업이 하도록 사용자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리운전노조가 2020년 7월 17일 노조설립 신고 필증을 교부받았어요. 17년 전인 2005년 대구지역 대리운전노조가 먼저 설립신고를 했고 필증을 받아 놓은 상태였는데, 이제 전국 단위로 변경신고를 한 거죠. 그런데 2017년 11월 고용노동부가 ‘대구대리운전노조’를 ‘전국대리운전노조’로 변경신고하는 것은 불가하다며 반려 통보를 했어요. 이날로부터 계산해도 설립 필증을 받기까지 무려 1,000일이 넘게 걸린 거죠. 필증을 교부받기 전까지 대리운전노조가 카카오모빌리티에 교섭을 요구하면 ‘너희들 노조 아니지 않냐’고 했어요. 그런데 설립 필증이 나오고 대리운전노조가 다시 교섭을 요구했더니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노동조합 설립 필증 받으신 건 축하할 일인데, 이거 어쩌죠? 저희는 사용자가 아닙니다만….’ 이런 식으로 나온 겁니다. 처음에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교섭에 응하지 않다가, 이제는 자신들이 사용자가 아니라며 발뺌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면서 계속 우기고 있는 거죠.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라 단지 일감을 중개만 할 뿐’이라고요.”
플랫폼 기업이 일감이나 일자리를 중개하는 역할에 그친다는 설정은 플랫폼 기업만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친기업 언론이나 정부 역시 이러한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단순히 일자리 중개 서비스를 제공할 뿐,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얻는 사람을 직접 쥐어짜거나 통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알바몬, 알바천국 같은 단순 구인·구직 플랫폼의 경우라면 이 말은 대체로 진실에 가깝다. 그런데, 카카오모빌리티 같은 플랫폼 사업자들도 정말 일감을 중개만 하고 있을까?
알고리즘은 취업규칙이다
“카카오모빌리티, 배달의민족, 쿠팡, 마켓컬리, 타다 같은 플랫폼 기업들을 보세요. 여기에서 단순 중개 플랫폼은 하나도 없어요. 이들 기업이 만약 일감만 중개한다면 절대 독점적 지위를 가질 수 없죠. 중개와 함께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려면 플랫폼 노동자와 중소자영업자, 입점업체나 납품업체 같은 중소업체 자본을 갈아 마셔야 해요. 반드시 통제가 필요하죠. 자사 플랫폼을 통해서만 일하거나 상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묶어 놓아야 하니까요. 상당수 플랫폼 기업들이 이렇게 통제하려고 동원하는 게 알고리즘 정보와 기술이고요.”
플랫폼 산업에서 ‘혁신’적인 요소를 구태여 하나 찾는다면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싶다. 과거에는 주로 작업장 안에서 사용자의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았다면, 플랫폼 시대는 주로 알고리즘을 통해 일감을 배정하고 가격(임금)을 결정하는 구조로 변화했다는 점 말이다.
이에 대해 플랫폼 기업들은 노동 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통제하지 않으며, 알고리즘을 활용한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할 뿐이라고 일축한다. 사용자 책임을 부정하면서 알고리즘 뒤로 숨어 버리는 것이다.
“저도 알고리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코딩 공부까지 해 봤는데 정말 복잡하더라고요. 사실 플랫폼 기업들에 알고리즘 정보를 공개하라고 하면 ‘도대체 어디까지 공개하라는 거냐? 이건 기업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맞받아쳐요. 그런데 저희가 정말로 알고 싶은 건 작동 원리죠. 알고리즘을 알아듣기 쉽게 노동자들한테 설명하라는 겁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주요한 알고리즘 정보가 분명히 있거든요. 배달 플랫폼의 경우 대략 네 가지 알고리즘을 저희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감 배정 알고리즘, 계정 정지와 관련한 알고리즘, 평점을 매기는 등급 알고리즘, 가격 결정 알고리즘이 있어요.”
이 네 가지 알고리즘이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오민규 동지의 설명이다. 노동자의 일감을 배정하는 것2)부터, 임금 수준을 결정하고, 징계 여부를 결정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과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은 서면으로 교부하거나 게시하도록 돼 있어요. 모든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게 해서 그 내용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취지이죠. 그리고 만약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려면 노동조합 내지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하잖아요. 플랫폼의 알고리즘도 마찬가지여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알고리즘이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변경될 경우에는 시정을 요구할 수 있게 노동조합의 도전을 받아야 한다는 거죠.”
최소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관련한 알고리즘은 취업규칙의 성격을 갖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알고리즘 변경 시에는 교섭과 협의를 통해 정해야 한다. 이는 플랫폼 기업들이 더 이상 플랫폼 알고리즘 뒤에 꼭꼭 숨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거나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노동시간 녹이기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그간 노동계에서는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노동자와 사용자 개념을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플랫폼종사자법’ 같은 특별법 형태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권을 극히 제한적, 예외적인 방식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만약 자본 입장에서 어떤 노동자를 플랫폼 노동자로 만들고 싶다면, 이걸 꼬아 버리면 식은 죽 먹기가 되는데요. 바로 노동시간입니다. 노동시간을 지울 수 있게 되면 플랫폼 노동으로 손쉽게 변환할 수 있는데, 기존의 전통적인 배달노동 방식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습니다. 짜장면집 배달노동자의 경우를 생각해 볼까요? 이 노동자에게 배달하는 시간만 노동시간으로 간주한다? 이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잖아요. 근로기준법 50조 3항에 따르면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있는 대기시간은 노동시간으로 봐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플랫폼 자본은 이 대기시간을 측정하기 어렵게 흩어 버린 겁니다.
우리가 봤을 때 로그인/로그아웃 한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보면 간단한데, 플랫폼 자본은 대기시간을 아예 빼고 싶은 거잖아요. 그러니 운송료나 운임료 혹은 수수료를 매기자. 말하자면 건당 보상체계를 하겠다는 거예요. 반면 평범한 노동자들의 경우 시간당 보상체계로 임금이 설계돼 있잖아요. 사실 현행 근로기준법이나 노조법도 그렇거니와, 다른 모든 나라의 노동법 시스템이 노동시간이 측정돼야만 잘 작동이 되거든요. 당장 생각해 봐도 그렇죠. 노동시간이 측정돼야 임금도 계산 가능하고, 주차·월차, 연장근로시간, 휴일근로시간, 퇴직금, 휴가, 이런 모든 것이 노동시간에 연동돼 있어요. 노동시간을 녹여 버리면 근로기준법, 노조법 적용이 매우 어려워지는 거죠. 결국 플랫폼 자본이 노동시간 측정을 어렵게 만들어 놓고는 근로기준법, 노조법 적용이 어렵다고 핑계를 대는 것에 불과한 거예요.”
플랫폼은 이렇게 노동시간을 녹여 버림으로써 노동자에게 응당 지급해야 할 몫을 삭제한다. 노동자들이 잠시 쉬는 시간,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 휴대폰 보는 시간 등 자투리 시간을 아예 없애든지, 그렇지 않으면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플랫폼 사업에서 노동시간 측정은 어떻게 가능할까?
“플랫폼 노동에 잘 작동할 수 있는 법체계를 만들면 되는데, 사실 현행 근로기준법이나 노조법의 몇 가지 조항들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가능하거든요. 예컨대 외근이나 출장이 잦은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어떻게 정할 거냐. 노동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소정근로시간인 1일 8시간 근무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근로기준법의 조항을 활용한다든지, 아니면 노사 간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시간을 확정하는 방법도 있고요. 제 생각에 가장 좋은 방법은 단체협약을 활용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모든 업종별로 다양하고 상이한 업무 내용을 일률적으로 법을 적용하긴 어렵잖아요. 그래서 가장 유연한 보호 시스템은 단체협약을 활용하는 거죠. 노동조합과 교섭하면 그 업종에 가장 알맞은 적용 방식을 합의를 통해 찾아낼 수 있거든요. 정부가 노사교섭만 촉진해 주면 되는 일이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마 지금으로서는 제일 바람직한 방식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플랫폼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을 노동법 안으로 포섭해 낼 수 있어야겠죠. 거듭 말씀드리지만 근로기준법, 노조법이 촘촘하게 보호해야 할 노동자들을 누락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노동자의 개념을 최대한 넓히고, 사용자 개념도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용자로 넓히고, 특히 플랫폼 노동의 노동시간도 잘 작동할 수 있는 내용들을 담는 법 개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봅니다.”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한국의 플랫폼 노동 대책
플랫폼 노동의 확산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최근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유럽 각국에서는 차량호출 운전기사나 음식배달 라이더가 자영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보아야 한다는 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플랫폼 노동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례를 넘어 법률이나 지침으로 노동자성을 명확히 하는 기준도 정립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플랫폼 노동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을까.
“잘 알고 계신 캘리포니아 주의회 AB5 법안부터 말씀드릴게요. AB5가 무슨 신비한 약자는 아니거든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회 법안 5호라는 뜻인데요. AB5법은 기업이 ABC 테스트3)를 모두 충족해야만 독립사업자로 볼 수 있다고 인정한 검증 요건이에요. 즉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게 물은 거죠. 당연히 플랫폼 기업들은 어마어마하게 반발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우버, 리프트 같은 차량공유 플랫폼 기업들이 홍보와 로비 비용으로 수천억 원을 쏟아붓습니다. 미국은 이제 주민투표로 법안을 수정하거나 발의할 수 있어서, AB5법에 대한 수정 법안을 발의하게 된 거죠. 이들이 발의한 수정 법안 내용이 뭐냐면 AB5 전체는 그대로 두되 앱 기반 기사들, 그러니까 배달·배송 앱을 사용하는 기사에 한해서는 AB5법이 적용되지 않도록 하는 수정안, 이른바 ‘프로포지션22’를 냈고, 최종 6:4 정도로 플랫폼 기업 쪽이 이기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 캘리포니아주 AB5법안은 살아 있지만 이게 앱 기반 기사들에겐 적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앱 기반 기사들에게 아무런 보호가 없느냐 하면 우버, 리프트 쪽에서 주민투표에서 승리하기 위해 여기에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실업수당 같은 몇 가지 부수적인 보장 대책을 내놓은 거예요. 이런 것들을 우리가 보장할 테니 대신 노동자로서 모든 권리를 다 가질 수는 없다고 못 박은 거죠.
그런데 이제 반전이 시작된 게요. 최근 캘리포니아주 고등법원에서 프로포지션22가 아직 위헌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다툼 국면에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이런 식으로 법이 되는 게 맞느냐는 굉장히 상식적인 문제 제기죠. 아마 대법원에서도 이기지 않을까 생각해요.”
해법은 간단하다. 국내에서도 ABC 테스트 법리와 같은 노동자성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게 부과하는 제도적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제 시선을 유럽으로 돌려 보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지난해 12월 ‘플랫폼 노동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입법지침’을 발표했어요. 이렇게 입법지침이 나오면 유럽연합 의회에서 논의해서 최종입법안을 의결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아마 1년여 정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쨌든 의결안 내용이 나오면 유럽연합에 속한 26개국 정부는 2년 이내 그에 따른 입법을 해야 돼요. 하지 않으면 유럽연합 내에서 무역 관련 제재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린 ABC 테스트와 비슷하게 플랫폼 기업과 노동자 간 고용관계를 추정하는 지표가 여기서도 나옵니다. 이 지표는 5가지4)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2개 이상만 만족하면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것이죠. 단순히 노동자성만 인정한 게 아니라 노사관계, 고용관계를 인정해요. 쉽게 얘기하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이 노동자일 뿐만 아니라 이 노무를 제공받는 기업이 사용자다.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라’라고 하는 노사관계를 인정합니다. (AB5법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거죠.
한 가지만 더 사례를 들면, 스페인 라이더법은 굉장히 구체적인 게 알고리즘 관련해서는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등의 기초가 되는 매개변수에 관한 정보를 노동자평의회(노동조합)에 제공할 것을 규정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알고리즘에서 우리가 실제로 필요한 게 뭔지를 구체적으로 잘 표현해 놓은 거예요. 아예 법 조문으로 명문화한 겁니다. 매개변수라는 단어는 이게 굉장히 알고리즘에 특화된 용어인데, 이제 ‘알고리즘에 대해 설명하세요’라고 하면 대충 설명하고 치울까 봐 구체적으로 이러이러한 건 최소한 공개해야 된다고 하는 것까지 집어넣은 거죠.”
누가 플랫폼 노동자를 사각지대로 내몰았나
다시 한국의 현실을 들여다보자. 플랫폼 노동에 대한 법적 지위를 두고 국내 정치권 역시 모종의 대책을 내놓았다. 그중에서도 민주당 장철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플랫폼종사자보호법안’은 세간에 큰 논란을 낳은 바 있다.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 사각지대에 처한 플랫폼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마련된 법안이 당사자를 포함한 노동계의 반발에 부딪힌 원인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국회에 제출된 플랫폼종사자법은 사실상 정부 입법안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 법은 노동자이건 프리랜서이건 플랫폼 생태계에서 일하는 사람을 기본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는데요.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런 거 하나 필요하겠네’라고 얼핏 들리죠. 그런데 이걸 제가 어떻게 설명하느냐면 우리 <질라라비> 독자들에게 친숙한 문제인 사내하도급법하고 연동해서 말씀드릴 거예요. 사내하도급 논리가 이것과 완전히 똑같거든요. 모든 사내하청 공정이 불법파견은 아니지 않느냐. 진성도급(합법적인 도급)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 장치가 없다. 근로기준법상 (사내하청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마땅히 없으니, 최소한 원청이 적정임금을 보장하도록 한다든지 일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거죠. 그러니 불법파견 판정을 못 받을 수 있는 진성도급 노동자를 위한 밑바닥을 깔아 주자는 논리입니다. 이게 실은 박근혜 정부가 사내하도급법을 입법하려고 했던 취지이기도 하죠.
이 말만 들으면 그럴듯한데 우리가 과거에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 같은 걸 본 적이 있지 않습니까. 결국 커닝페이퍼가 되는 거죠. ‘아, 이렇게 하면 불법파견을 피해 갈 수 있겠구나.’ 플랫폼종사자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취약한 권리 상태에 놓인 플랫폼 노동자들을 위해 ‘바닥을 올리자’고 하지만, 결국 멀쩡한 노동자를 프리랜서로 취급할 기준선을 제공하는 셈인 거예요.”
한편 ‘민간 중심’, ‘자율 규제(최소 규제)’ 원칙을 강조해 온 윤석열 정부의 등장은 플랫폼 자본으로서는 착취구조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은 플랫폼 자본과 노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궁금했다.
“윤석열 당선인도 대통령 후보 시절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었죠. 하지만 경제정책 전반에 걸쳐서는 규제 완화 기조가 분명하고, 노동을 경제의 종속변수로 보고 있잖아요. 결국 자본에 자유로운 경영 여건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펼치겠죠. 플랫폼 기업에 알고리즘 공개 의무를 법제화하는 방안에서도 그런 방향을 확인할 수 있죠. 알고리즘이 경쟁력의 원천이기도 해서 의무화하는 입법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지금 윤석열 새 정부 입장이거든요. 다시 말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경우엔 공개할 수 없다는 얘기죠. 다만 국민 생활에 큰 해악을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 수색영장 발부하듯 알고리즘 정보에 대한 공개 명령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거예요. 과연 검찰총장 출신다운 발상이죠. 알고리즘에 대한 알 권리를 노동조합한테 주는 게 아니라 기업 범죄로 한번 다뤄보겠다는 거니까요. 결국 범죄 아니면 죄다 열어 주겠다는 거죠.
물론 반노동 친기업 기조를 노골적으로 내건 윤석열 정부라고 해도, 현재 플랫폼 노동조합들이 투쟁을 통해 쟁취한 것들, 예컨대 카카오모빌리티나 쿠팡이츠와 교섭 중인데 그걸 공권력을 동원해 가로막는다거나 하진 않겠죠. 그렇다면 결국은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봐요.
앞에서도 법제도 개선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지만 사실 쉽지만은 않겠죠. 문재인 정부에서도 쉽지 않았던 거고요. 하지만 법제도 개선 과제나 플랫폼 노동조합의 요구를 우리가 얼마나 크게 사회적 쟁점으로 만들어 내느냐에 주안점을 두고 가는 것이 앞으로 중요하겠다는 생각입니다.”
법제도의 정체와 플랫폼 기업의 책임 회피에 맞서 플랫폼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결론이다. 최근 플랫폼 노동조합들의 교섭을 살펴보면 이 과정이 그렇게 만만치 않음을 보여 준다. 역시나 핵심 쟁점은 알고리즘에 대한 플랫폼 노동자들의 알 권리 문제였다. 이를 사회적으로 쟁점화하는 것이 플랫폼노동희망찾기의 목표이기도 하다.
고용보험, 산재보험을 평범한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적용하라는 요구도 중요한 활동 목표이다. 여기에 플랫폼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 또한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이처럼 산적한 과제들을 플랫폼 노동조합 당사자들과 함께 꾸준히 목소리 내면서 사회적 요구로 만들어 내겠다는 각오다. 혁신으로 포장된 플랫폼 산업의 이면을 드러내는 것, 그로써 노동자의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하라는 요구를 공론화하겠다는 플랫폼노동희망찾기의 활동에 <질라라비> 독자들의 더 많은 관심과 지지를 요청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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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영선, 존버씨의 죽음, 오월의봄, 2022, p159.
2) “우리가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플랫폼 알고리즘으로 배달·배송이나 택시·대리운전 등에서 볼 수 있는 배차 알고리즘이다.” 오민규, “‘배달 라이더, 하늘을 날으라’고? AI가 그렇게 시키드나”, 프레시안, 2021.08.03.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80214054381275)
3) A) 사용자의 통제와 지시로부터 자유로울 것, B) 하는 일이 사용자의 통상 업무가 아닐 것, C) 사용자와 같은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별개의 영업·직업을 소유한 자일 것.
4) △ 노동자가 받는 보수를 사실상 결정하거나 보수의 상한선을 설정, △ 노동자가 일할 때 복장·두발·유니폼 등 외관, 고객에 대한 응대 방식, 업무 수행에 관한 규칙을 따르도록 하기, △ 전자적 방식 등을 통해 노동자의 업무 수행을 감독하거나 일의 결과를 평가, △ 일하는 시간 혹은 일하지 않는 시간을 노동자가 선택할 자유를 제한, 일감(과업)을 수락하거나 수락하지 않을 자유를 제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대신해 노무 제공을 하도록 할 자유를 제한하는 등 노동자가 노무 제공을 스스로 조직할 자유를 사실상 제한하거나 이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 △ 노동자가 서비스를 제공받는 고객을 독자적으로 개척하거나 플랫폼이 아닌 다른 제3자를 위해 일할 가능성을 사실상 제한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