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대담)
“직무급과 주 4일제, 정말로 원한다면 논의를 뒤집자”
[노동 없는 대선 ②] 한상균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노동 문제를 둘러싼 한국의 사회적 상황은 녹록지 않다. 플랫폼을 위시한 새로운 고용 형태의 등장, 자동차·에너지 등 분야의 산업 전환, 여전히 늘고 있는 비정규직 규모 등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해결해야 할 일이 가득하다.
그런데도 20대 대선은 ‘노동 없는 대선’으로 평가된다. 선거가 90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정의당 등 일부 정당을 제외하면 노동에 대한 큰 그림을 내지 않고 있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대개 ‘반(反)노동 막말’과 이에 대한 반발이다. 지난 대선에서 최저임금 1만 원,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공약이 주목받은 것과 비교하면 퇴행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이번 대선의 노동 논의가 ’반노동 막말’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나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노동 정책인 직무급과 주4일제, 5인 미만 근로기준법 차별은 어떻게 봐야 할까. 대선이 치러지기 전 꼭 논의되어야 할 노동 문제에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 노동의 관점에서는 어떤 정책 대안을 낼 수 있을까. 한상균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과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이 대담을 나눈 이유다.
대담을 세 편으로 나눠 연재한다. 둘째 편에는 직무급과 주4일제, 5인 미만 근로기준법 차별 등 대선 국면에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노동 의제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중략)
“직무급, 산별교섭과 공정한 직무 평가 없이는 안 된다”
프레시안 : 대선에서 잠시나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노동 의제에 대해 묻겠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처음 찾은 사람이 직무급을 주장해 온 정승국 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였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도 정의로운 임금의 사례로 직무급을 들었다. 직무급 논의를 어떻게 봐야 할까?
한상균 : 지금 대선 후보들이 이야기하는 직무급에는 본질이 빠져 있다고 본다. 직무급을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걸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한 이야기는 빠져 있다. 직무급이라고 하려면,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가 어디에서 일해도 비슷한 월급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공장 노동자를 예로 들면, 대기업 공장 A에서 일할 때 100원을 받았다면, 중소기업 공장 B로 옮겼을 때도 최소 80~90원은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건 국가가 하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산업의 이해관계자들이 합의를 해야 한다. 산업에서 합의가 되려면 산별교섭도 있어야 하고,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까지 단체협약 효력을 확장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재벌 대기업의 이익을 중소기업 노동자에게까지 분배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교섭 보장도 필요하다. 이런 정책이 패키지로 가야 직무급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재벌에 꼼짝 못하는 기득권 정당들은 재벌이 들어가는 이야기는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재벌이 곳간을 열지 않으면 직무급과 관련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 직무급에 대해서는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산업전환 같은 문제까지 포괄해서 좀 더 제대로 된 토론이 필요하다.
오민규 : 직무급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직무급을 도입하기로 해도 현장에서 반대에 부딪치는 굉장히 중요한 이유가 있다. 직무 평가다. 평가를 누가 하냐, 그리고 평가가 공정하냐. 이 점에 대해서 대한민국 노동자는 다 불신한다. 회사를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직무급이 시행되는 나라에서는 임금 평가에 대해서 최소한 회사가 이걸로 장난치지는 않는다는 정도의 믿음, 신뢰가 있다. 한국은 아니다. 재벌 기업도 그렇다. 재벌가 아들, 딸이 와서 이사를 하고 과장을 단다. 일단 이게 말이 안 된다. 승진이나 보상 시스템이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도 없다. 회사가 보기에 예쁜 놈 떡 하나 더 주고 미운 놈 덜 주는 시스템이라고 여긴다. 한국에서 87년에 민주노조가 생기는 중요한 이유도 이거였다. 회사가 왜 쪼잔하게 시급 갖고, 10원짜리 한 장 갖고 장난을 치냐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 다 임금을 평등하게 받자고 했다. 이게 현재의 연공급제로 이어졌다.
한상균 : 그 장난이 정말 영혼에 상처를 준다.
오민규 : 독일에서 직무급을 도입할 수 있었던 중요한 근거가 있다. 독일에서는 학교에 다닐 때부터 직무 숙련도 체크를 한다. 교육 시스템도 다르다. 중학교에 갈 때부터 직업을 구할 사람들을 위한 직업훈련이 이뤄진다. 또 굉장히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때부터 노동법을 배우고 노사 교섭을 배우고, 교섭 실무도 한다. 한국은 어떤가. 모든 사람이 다 대학에 가고 대학원에 갈 거라고 가정하고 학생들을 가르친다. 생산직 노동자의 길을 걷는 사람은 그 트랙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간주한다. 이런 사회시스템부터 싹 바꿔야 한다.
한상균 : 직무급을 시행하는 나라에서 직무평가의 사회적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하는 일이 또 있다. 직업교육과 직무 숙련도 인증 시스템을 노동조합총연맹이 운영하는 거다. 노동조합이 운영하는 교육기관에서 양성한 노동자의 전문성을 기업이 인정하고 직무급도 이런 기반에서 시행된다. 국가는 이 교육을 지원한다. 이러면 직무평가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제도와의 관계 속에서 직무급이 논의돼야 한다.
오민규 : 직무급을 도입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좋다. 하지만 직무급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사회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지, 산별 교섭은 어떻게 이뤄낼지와 같은 전제조건에 대한 논의가 먼저 돼야 한다. 직무급 한 방에 안 된다. 제일 먼저 갖춰야 할 제도는 산별 교섭이다. 전체적인 직무급을 짜고 시행하기 전에 일단 산별 교섭으로 산별 최저임금을 정하고 해당 산업의 신입사원 기본급이 그 밑으로 안 떨어지게 해야 한다. 이런 첫발부터 떼고 신뢰를 좀 쌓아나가면서 공정한 회사 평가 시스템을 만들어야 직무급이 될 수 있다.
한상균 : 끝장 토론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국가가 독과점 기업과 한통속이 되서 결정해놓고 노동자에게 강요하는 식으로 노동 정책을 추진했다. 대선을 앞둔 정치영역에서는 그걸 뛰어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심장에서 노동이 펄떡펄떡 뛰지 않으면 어떤 미사여구를 곁들여 처방을 내놔도 그건 다 헛방이다.
프레시안 : 공공부문에서 시설관리 노동자들에게 직무급을 도입한다고 했을 때 당사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최저임금 수준에서 직무급을 결정했던 게 기억난다.
오민규 : 맞다. 그 이야기가 핵심이다. 지금은 최저임금이 직무급이다. 그렇게 보면 한국에서는 이미 70% 현장에서 직무급이 돌아가고 있다. 다 최저임금 준다. 이런 직무급제를 누가 지지하겠는가?
“주 4일제, 5인 미만 사업장 등 취약 노동자를 기준으로 만들어가자”
프레시안 : 주 4일제가 주목받기도 했다. 심 후보가 먼저 신노동법을 이야기하면서 주4일제를 이야기했다. 이 후보도 언젠가 가야 할 길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진영 일각에서 주4일제가 정규직 중심적인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주4일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오민규 :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를 보면, 언젠가는 주4일제로 가야 한다는 데까지 반대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도입하면,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말고 할 수 있는 데가 없고, 결국 또 약자들은 소외되는 거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예를 들어 5인 미만 사업장은 지금 근로기준법 적용도 안 되는데 주4일제가 되면 또 이들만 피해보는 거 아니냐고 한다. 학교도 그렇고 전 사회가 다 주 5일제를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어 주 4일제 실현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다. 공공부문과 1000인 이상 사업장은 하겠다고 하면, 1~2년 안에 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그렇게 급하게 하면 또 5인 미만 사업장 같은 곳은 버리고 가게 된다. 중대재해법 때도 그랬고, 직장내괴롭힘방지법 때도 5인 미만 사업장이 제외됐다. 각종 예외조항을 통해 농업, 어업, 이주 노동자도 버리고 갔다. 프레임을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정반대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예외없이 주 4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뭐가 필요하고 뭘 해야 하나. 오히려 이런 논의를 하자는 거다. 가지 말자는 게 아니라 정반대로 빌드업(build-up)을 하자는 거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논의해야 할까.
오민규 : 공공부문과 1000인 이상 사업장에는 주 4일제 빨리 하고 싶어도 좀 기다려봐. 너희들 지금까지 제일 먼저 혜택 받아왔는데 일단 5인 미만 사업장 같은 곳들 준비되기 전까지는 못 간다고 잡아놔야 한다. 그 다음에 사회안전망부터 시작해서 급여체계도 시급 기반에서 월급 기반으로 바꿔야 한다. 시급 기반에서는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임금이 깎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중소 영세기업의 임금을 원청이 공동으로 책임지게 하는 문제, 근로기준법이 모든 노동자에게 차별 없이 적용될 수 있게 하는 문제, 이런 법 제도를 깔아놔야 주 4일제로 갈 수 있다. 그런 법 제도를 깔기로 하고 내년 목표는 이거, 그 다음해 목표는 이거 하는 식으로 정해놓고 몇년도까지는 주 4일제로 간다. 이런 웅대한 꿈과 로드맵을 갖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럴 때만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나 비정규직 같은 약자들 입장에서도 ‘우리가 2등 노동자, 2등 국민 아니구나. 우리가 기준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될 거다.
한상균 : 산업전환기이기도 하고, 한국의 노동시간은 연 1900시간 이상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길다. 노동시간 단축은 삶의 질이라는 관점에서 노동계가 끊임없이 제기해온 문제다. 주 4일제든 주 35시간제든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데는 분명한 근거가 있다. 이걸 실현하는데 있어서는 오 실장의 주장에 동의한다. 되게 많은 공정이 필요할 것 같다. 내일 합의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노동 문제 관심 있다면, 5인 미만 근기법 차별은 대선 전에 폐지해야”
프레시안 : 이야기가 나온 김에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장이면서 국민의힘 간사인 임이자 의원이 한국노총에 가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적용은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해 이 논의가 힘을 받는가 싶었다. 그런데 윤 후보가 “사업자의 투자 의욕이나 현실을 반영 못햇을 때는 결과적으로 근로자에게 불이익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도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한 위원장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해온 노동조합인 권리찾기유니온에 있으며 이런 논의의 한복판에 있었다. 어떤 생각을 했나?
한상균 : 그저께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과 함께 강추위를 뚫고 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 걸으면서 이재명 캠프와 윤석열 캠프를 다 돌았다. 캠프 앞에서 기자회견도 했다. 윤석열 캠프에는 문서로 내용만 전달했고, 이재명 캠프에서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윤준병 의원과 이수진 의원이 현장에 직접 와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당사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국민이냐. 왜 저희 같은 사람들은 카카오톡 한 통으로 해고를 당해도 하소연 할 수 없고, 연장노동을 해도 수당도 못 받냐. 갑질을 당해도 참고 사아야 하냐. 정치가 이런 거 해결 안 하고 뭘 하는 거냐.’ 이런 이야기를 막 쏟아냈다. 참석자들이 다 울었다. 저도 막 눈물이 쏟아지더라.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여튼 이번 대선에서는 반드시 근로기법 차별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강하게 다짐했다.
프레시안 : 이재명 캠프에서 윤준병 의원과 이수진 의원이 나왔을 때 한 위원장은 어떤 이야기를 했나.
한상균 : 저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차별 문제 해결은 한시가 급하다. 전세계에서 사업장 규모로 근로기준법을 차별해서 적용하는 나라가 어디있냐. 이건 부끄러운 일이다. 선진국이라고 말로만 떠들지 말고, 이런 문제는 선거의 당리당략과 무관하게 해결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번 정기국회 안에 반드시 해결해라. 180석 민주당이 이런 문제에서까지 국민희힘 핑계 안 댔으면 좋겠다고 했다. 두 의원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아마 정기국회에 올려서 올해 안에 처리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패스트트랙을 포함해서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재명 후보가 다음에 노동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텐데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라고 했다. 또, 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부 조항을 비틀거나 시행령으로 비비 꼬아서 사용자들이 법을 악용하는 근거를 줘서는 안 된다. 이 문제만큼은 차별 철폐의 큰 분수령으로 보시고 정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프레시안 : 민주당이 정말 노동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이 정도는 해결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한상균 : 대선 전에 해결하면 좋겠다. 당선되고 나면 문제 해결이 한 없이 늘어질 수 있다. 패스트트랙에 태운다고 해도 330일이 걸린다. 대선 전에 빨리 해결해야 한다.
프레시안 : 어쩌면 5인 미만 근로기준법 차별 문제에 대한 이후 대응이 노동에 대한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관점을 보여주는 시금석일 수 있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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