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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3_유심칩 압수수색 유감(전성인)

2020년 08월 13일

유심칩 압수수색 유감

 

전성인(홍익대 경제학부)

 

지난 7월 29일 소위 “검언유착”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의 정진웅 부장검사 등 수사팀은 한동훈 검사장의 휴대폰 유심칩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 그리고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 유심칩을 공기계에 꼽아 마치 한 검사장이 통화하는 것처럼 다른 통화자를 오인시켰다. 그리고 그런 오인에 근거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를 빼내서 활용했다.

혹자는 이런 행동이 이미 ‘허가받은 적법한 행위’라고 본다. 법원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할 때, 유심칩의 “제한된 범위 내의 사용권”도 함께 허락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언론보도에 따르면 법원은 “한동훈 검사장 아이디로 기존 비밀번호를 무효화하고, 한 검사장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인증번호를 받아 비밀번호를 바꿔 카카오톡에 접속한다”는 내용의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해 주었다고 한다. (중앙일보, https://bit.ly/3kDfoB1)

이런 법원의 영장 발부가 합법인가 아니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한 불법인가의 논쟁은 여기서는 지양하기로 한다(일단 그것은 법률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남겨 두자). 그러나 법원의 영장 발부가 “현행 법률의 규정”과 “고상한 법 논리”에 의해 법률가들이 보기엔 적법한 것일지라도, 국민의 한 사람인 필자는 몹시 불편하다. 법 논리가 무엇이건 이런 행태가 헌법이 보장하는(또는 우리 사회가 합의한) 국민의 기본권인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과 통신의 자유를 결정적으로 침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먼저 당시 상황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자. 검찰이 한 행위는 피의자의 유심칩을 이용하여 “새로운 통신”을 한 것이다. 모든 통신에는 명시적 또는 암묵적인 상대방이 있다. 검찰이 송신인이었던 통신의 상대방은 아마도 카카오였을 것이다. 카카오톡에 접속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정상적으로 ‘카카오 측에 자신이 불법행위를 수사 중인 국가기관임을 밝히고 수사의 협조를 요청’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한동훈 검사장”으로 포장했다. 즉 국가기관이 국민을 기망한 것이다. 과연 국가기관은 수사 목적을 위해서라면 국민을 기망해도 무방한가? 또한 법원은 영장 발부 과정에서 이러한 수사 기법을 허용할 재량권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이 이번 행태를 보고 필자가 불편함을 느끼는 첫 번째 이유다.

필자가 불편함을 느끼는 두 번째 이유는 검찰이 수신인이었던 상황과 관련된다. 국가기관이 허위로 자신이 피의자인 것처럼 행세한 이유는 ‘통화의 주체가 본인임을 확인하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과정인 인증번호를 수신하기 위함’이었다. 즉 실수로 기망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국민을 속일 목적(한동훈 검사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 검사장이라고 속이기 위함)으로 기망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이것은 매우 적극적인 의도를 가진 기망행위다. 이런 기망 행위의 결과로 카카오(또는 통신회사)는 아무 것도 모른 채, 통신의 상대방이 진정 당사자 본인이라는 믿음 하에서 인증번호를 송신하고 한 검사장을 수신인으로 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전달한 것이다. 국가기관의 거짓말이 단순한 거짓말에 그치지 않고, 상대방을 적극적으로 속여서 그 대가(인증번호 등)를 얻어내는 상황이 된 것이다. 과연 이렇게 적극적인 기망행위의 대가로 증거를 수집해도 되는 것인가?

이런 증거 수집 행태가 문제인 이유는 우리나라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정보의 자기 결정권과 통신의 자유가 이 과정에서 적절히 보장되었는지, 또 만일 제한되었다면 수사의 필요를 위해 적법한 법률의 절차에 의해 최소한으로 제한된 것인지 매우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피의자인 한 검사장의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은 잘 보장되었는가? 카카오톡 비밀번호를 검찰이 임의로 변경한 것을 보면 이 권리가 잘 보장되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카카오톡의 실시간 대화를 검찰이 들여다보는 상황에서 한 검사장의 통신의 자유가 올바르게 향유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혹자는 한 검사장이 ‘피의자 신분’이고 영장 집행의 대상이기 때문에 그의 기본권이 일정한 정도 제약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카카오톡을 통해 한 검사장의 유심칩이 꼽힌 공기계로 넘어오는 실시간 대화는 압수수색의 대상인 “과거의 메시지 기록”이 아니다. 따라서 이것을 국가기관이 들여다보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검찰은 오직 과거의 기록만을 찾았을 뿐, 실시간 대화는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화면을 통해 계속 넘어오는 실시간 메시지를 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도대체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검찰의 주장이 ‘메시지를 보기는 했으나 기록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라고 해석해도 문제는 남는다. 그렇다면 검찰이 기록하지만 않는다면 사인간의 메시지를 맘대로 들여다봐도 괜찮다는 말인가?

보다 큰 문제는 한 검사장이 아니라 카카오 회사 또는 실시간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던 한 검사장의 지인들이다. 이들은 범죄의 피의자들이 아니다. 따라서 국가가 이들의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이나 통신의 자유를 함부로 침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은 국가기관의 기망 때문에 한 검사장과 통신하려고 했던 본인의 의사를 구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의사에 반하여 그들이 인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국가의 수사기관과 통신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국가의 수사기관과 통신하는 것을 의도하거나 선택하지도 않았고, 통화의 상대방이 국가의 수사기관이라는 점을 통보받지도 못했다. 그들에게 국가의 수사기관이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도 않았고,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국가가 이런 방식으로 공권력을 행사해도 되는 것인가? 경찰이 속도위반으로 세칭 “딱지”를 끊을 때에도 자신의 소속을 밝히는데 실시간으로 특정인이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들여다보면서 발신인에게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인가?

필자는 이 모든 것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전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검찰이 통신회사나 카카오로부터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정정당당하게 필요한 서류를 법원에서 발급받아서 해당 회사에 ‘수사 목적상 필요’를 고지하고 해당 정보를 요청하여 획득하는 것이 옳다. 이를 통해 피의자의 카카오톡 계정을 복원한 후에도 실시간 대화를 들여다보게 되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마땅하다. 어떠한 수단을 강구해서도 “현재의 실시간 대화를 보지 않으면서 과거 대화 정보만을 추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이러한 수사 기법을 포기해야 마땅하다.

물론 법률 전문가는 다른 논리로 이런 수사 관행이 적법한 것이고 헌법이 정한 테두리 내에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또 설사 현행법상 불법이더라도 수사의 필요성 때문에 그런 불법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논리에서건 만일 우리 사회가 이런 수사행태를 그대로 용인한다면 검찰은 앞으로 유심칩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사실상 피의자의 모든 통신내용을 맘대로 들여다보게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국민들은 우리나라의 사법제도가 쉽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다른 나라의 통신 수단을 활용하는 방법을 강구하게 될 것이다. 전화기 생산업체나 통신회사는 유심칩을 사용하는 통신기기가 변경되면 무조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등록된 당초 사용자가 추가로 인풋을 넣어야만 작동하도록 하는 과정을 추가하게 될 것이고, 국민들은 보다 확실하게 핸드폰을 잠글 수 있는 기기를 선택하게 될 것이고, 무엇보다 카카오톡을 떠나서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다른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사이버 망명하게 될 것이다. 결국 검찰의 이런 무지막지한 수사 기법은 사실상 활용 불가능한 대안으로 전락하고, 국민들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과 통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다른 나라의 법제도에 의존하는 비용과 모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 결론은 기본권 보장을 사회의 기본 조직 원리로 채택한 민주 국가에서는 있어서는 안되는 결론이다. 우리는 지금 그 결론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인가? (끝)

 

 

첨부: ED200813_송곳과프리즘_유심칩_압수수색_유감(전성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