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지원금 지급과 재난 위기 대응
전성인(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어제(3/30) 정부는 소득 하위 70% 구간까지의 국민들에 대해 4인 가구 기준으로 100만원의 재난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아직 구체적인 기준이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대략 월소득 700만원대 초반인 가구가 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적으로 잘된 일이다. 재정의 새로운 기능에 비로소 정부가 눈을 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가지 다듬을 점이 있다.
첫째, 이 재난 지원금은 압류가 불가능한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재난 지원금이 현금으로 지급될지, 아니면 상품권이나 지역화폐 또는 기타 전자화폐 형태로 지급될지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바는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 구체적 형태가 어떠하건 간에, 이 지원금을 압류 불가능 자산으로 지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 그럴까?
재난 지원금이 실제로 지급되는 시기는 5월 정도로 예상되는데, 이 때까지 경제위기가 진정되지 않으면 수혜 대상 가구중 일부는 연체나 부도 상태에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재난 지원금은 자칫 수혜 가구의 ‘사라진 소득 보전’이나, ‘총수요 진작’ 등 당초 목적이 아니라, ‘채권 금융기관의 채권회수’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실제로 과거 수재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각종 의연금 등이 이재민에게 지급되었을 때, 채권 금융기관이 이를 압류하여 자신의 연체/부도 채권 보전에 사용했던 사례가 심심치 않게 있었다. 그래서 이런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이 재난 지원금을 압류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연체나 부도 중에 있는 가구는 별도의 압류 불가능 통장을 만들도록 하고, 그 곳에 재난 지원금을 넣어 주어야 한다.
둘째, 재난 지원금은 균등하게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언론보도(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34916.html)에 의하면 홍남기 부총리 및 김상조 정책실장이 균등지급인가 차등지급인가 문제를 두고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 의장과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과 설전을 벌였다고 한다. 청와대와 기재부는 차등 지급을, 민주당은 균등지급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균등지급을 하는 것이 맞다. 지금 상황이 긴급하고 당사자들의 소득 및 재산 상황을 엄정하게 평가할 수 없다는 데에는 기재부도 동의한다. (그래서 재산은 판정 기준에서 빼고 소득만으로 지원 대상을 선정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차피 소득이라는 지표 자체가 불완전한 지표로서 긴급성 때문에 사용하는 것인데 이 불완전한 지표에 근거하여 차등을 둘 이유가 없다.
더구나 과연 소득을 가지고 차등을 두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과거의 중위 소득자도 이번 위기 중에 소득의 상실을 겪었을 수 있고, 그럴 경우 상실 소득의 규모가 저소득자에 비해 작다고 추정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총수요 부양이라는 또 다른 목적을 생각한다면 굳이 소득을 기준으로 지원금을 차등할 이유가 없다. 마지막으로 형평성을 생각해서 지급을 차등화하는 것이라면 지출 측면에서 형평성을 도모하려고 하기 보다는 지출은 균등하게 하고, 그 재원 조달 과정에서 형평성을 반영하는 것이 더 좋다. 왜냐 하면 우리나라의 세제는 이미 다양한 측면에서 누진성과 각종 공제제도를 구축해서 상당한 정도로 형평성을 구비하고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긴급한 재난 지원금은 균등하게 지급하고, 형평성 문제는 재원 조달시 부자에게는 세금을 많이 걷고, 가난한 사람에는 조금 걷거나 안 걷는 방식으로 대응하면 된다.
셋째, 어차피 제2차 추경을 편성할 예정이라면 재난 극복을 위한 한시적 부유세를 신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유세는 이번 재난이 아니더라도 향후 노동을 통한 성장 잠재력 확충을 위해 전향적으로 그 도입을 검토해야 할 세목이다. (현재 부과되고 있는 종합부동산세는 필요시 부유세와 통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유세를 일상적인 세제로 정착시키기 이전이라도 이번과 같은 미증유의 국가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시적 부유세를 통해 재정 여력을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시적 부유세를 부담할 부유층의 범위와 세율은 사회적 논의를 거쳐 결정하면 된다. 어쩌면 구체적인 수치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고 사회 통합을 이루기 위해 부유층이 기꺼이 앞장선다는 그 상징성에 있다.
넷째, 기업은 고용 유지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국가가 유례없는 규모의 재정 및 금융 지원책을 기업에게 퍼붓는 이유는 기업의 부도를 막고 그를 통해 고용을 안정시키기 위함이다. 기업이 저만 살겠다고 노동자를 해고 하는 행위는 한계 노동자의 부양 부담을 그대로 국민들에게 전가하는 행위다. 얼마 전 화상회의 형태로 진행된 G20 회의에서 고용 안정이 매우 중요한 경제정책 목표로 공감대를 이룬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지난 3월 23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경제 활력 제고와 고용·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경영계 건의’를 통해 소위 ‘쉬운 해고’를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정말로 앞뒤 맥락 없이 나온 욕심이 아닐 수 없다. 국가로부터 받을 것은 다 받고 기업이 위기 극복을 위해 져야 할 부담은 하나도 지지 않겠다는 것인가? 정부는 위기 과정에서 고용 의무를 다하기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기업에게는 아낌없이 지원하여 위기를 넘기도록 도와주되, 위기 극복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기업에게는 깐깐하게 지원 여부를 심사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의 첫 번째 파동은 어느 정도 진정되었지만, 경제위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정부는 단기적인 시장 지표의 등락만 쳐다보지 말고, 실제로 경제 위기가 확산되지 않도록 꼭 필요한 일은 과감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