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인가 개혁인가
전성인(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예상한 대로 여당이 압승했다. 몇몇 접전 지역의 등락이 소소한 관심사이기는 했지만, 대세는 총선 훨씬 전에 이미 결정된 상태였다. 많은 언론은 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국민들이 ‘심판’보다는 ‘안정’을 택했다고 적었다. 안정이라…
그렇다. 여당은 지난 3년 동안 적어도 경제정책의 측면에서 ‘개혁’은 하지 않고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충실하게 계승했다. 잠깐 반짝했던 최저임금 인상조차 곧바로 놓아 버렸다. 인터넷전문은행부터 사모펀드 규제완화까지 과거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했고 심지어 더 왜곡했다. 심지어 이번 총선에서 강남 지역구에 출마했던 여당 후보들은 1가구 1주택 종부세 완화까지 공약했다. 어떤 정치인은 시중 과잉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무기명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정이라…
물론 조국 사태와 코로나사태의 와중에서 경제정책이 이번 총선의 핵심 논점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경제정책의 실패나 불안감이 이번 총선에서 여당의 발목을 잡지 않았다는 점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찌 보면 경제정책의 측면에서 여당과 야당의 편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은 다른 측면에서 조금 덜 부끄러운 정당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런 해석에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28년만에 최고라고 하는 66.2%에 달하는 엄청난 총선 투표율은 ‘국민들의 소극적인 선택’보다는 ‘어떤 것을 향한 열망’을 암시한다. 마땅히 찍을 곳 없는 국민들의 선택이라고 해석하기에는 투표율이 너무 높은 것이다.
그럼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과연 경제정책의 보수화, 안정화를 희구했던 것일까? 아니면 못다 한 경제민주화를 완수하라는 불같은 명령이었을까? 아니면 경제정책은 어찌 되었건 사법개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국민의 뜻을 정확히 읽어내는 데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규제완화로는 성장할 수 없다. 특히 해고를 쉽게 한다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노령 사회다.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노동자의 숫자가 감소하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인적 자본 형성을 장려하고, 그 훼손을 최소화해야 한다. 노동자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소모품으로 여기는 노동 정책은 인적 자본의 형성과 부합할 수 없다. 새로운 노동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둘째, 세금을 어디서 거둘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경제활동을 열심히 한 성과에 대해 세금을 매긴다. 소득이 높은 사람에게 소득세 매기고, 이익이 많이 난 기업에 법인세 매긴다. 그러나 이래서는 경제활동을 장려하기 어렵다. 경제활동을 열심히 한 사람에게 뺨을 때리는 격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고소득자가 아니라 부자에게 세금을 매겨야 한다. 즉 종부세처럼 자산 보유에 대한 과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자산보유에 대한 과세는 특히 생산 활동에 자산을 투입하지 않으면서 자산의 가치 상승에만 눈독을 들이는 투기적 보유에 경종을 울리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혹자는 과세 행정의 현실적 어려움을 들어 난색을 표하지만, 이를 극복할 방안을 찾는 것이 정책당국자의 과제다.
셋째, 재벌 정책에 대한 엉거주춤한 태도를 버리고 규율을 재정비해야 한다. 재벌 총수와 대통령 간의 부당한 거래라는 국정농단에 대한 반성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언젠가부터 아쉬울 때면 재벌에게 달려가 손을 벌리는 모양새를 거침없이 연출하고 있다. 이같은 문재인 정부의 태도는 이 정부가 또 다시 재벌에 기대어 단기적인 성장률만 관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낳기에 족하다. 대통령 공약집에 있는 그 수많은 재벌 관련 약속을 다시금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넷째, 금융 시장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목하 금융시장의 최대 현안인 라임 사태는 우리나라가 부지불식간에 시장의 투명성을 그동안 얼마나 훼손해 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금융 시장의 투명성은 점증하는 은퇴세대에게 안정적 자산운용 기회를 제공하고, 은행권에 치우친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균형을 잡기 위해 꼭 필요한 특성이다.
금융위원회는 사모펀드 시장의 발전을 위한다면서 사모펀드 규제를 완화했지만, 라임 사태는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섣부른 규제완화가 아니라 적정한 수준의 사전 규제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사후 검사 조직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 지나치게 느슨한 규제를 적정한 선까지 끌어 올리고, 시장 규율을 담당하는 금융감독원의 검사 인력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의 부정과 부패를 일소해야 한다. 모든 권력은 부패할 수 있으며, 특히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역대 정권을 보면 집권 3년차부터 각종 정치적 비리가 터져 나오곤 했다. 과연 이번 정부가 예외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현재 추진되는 검찰 개혁이 사실은 정치권의 불법이나 부패를 덮기 위한 술책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정치권의 부정부패 일소가 없는 한 그 거울인 금융시장이 투명해질 수 없다.
이번 총선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지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재인 대통령의 몫이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완전히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사들까지 국회의원에 눈독을 들이는 현실에서는 어쩌면 사법부도 관리하에 편입되었을지 모른다. 이제 성과는 문 대통령의 책임이다. 이번의 총선 승리가 열망의 구현이 될지 언필칭 안정의 연장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아마도 국민들은 2년 뒤 대통령 선거에서 이번 총선에서의 바램이 무엇이었는지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