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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인의 경제노트]권익위는 과연 공익신고자를 보호했을까 -경향신문 오피니언(190509)

2020년 02월 24일

권익위는 과연 공익신고자를 보호했을까
[전성인의 경제노트] – 경향신문 오피니언(190509)

요즘 경제 분야 칼럼 재료가 차고 넘친다. 경제성장률이 곤두박질치고 있고, 인터넷전문은행 대주주 적격성 심사나 론스타 국제중재재판 결과도 관심사다. 공장 바닥을 뚫고 증거를 인멸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의 파장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사안이 넘치는데도 이번 칼럼의 주제는 다시 한번 유선주 전 공정위 심판관리관(직위해제 상태이므로 그 조치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전’이라고 표기함. 이하 ‘유 국장’) 문제다. 그 이유는 유 국장 주장의 함의를 따질 사람이 많지 않아 보여서 그러하고, 그 주장의 함의와 불공정함의 개연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지난 4월29일,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유 국장의 공익제보자 보호신청을 기각했다. 권익위가 4월30일에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권익위는 유 국장의 행위를 공익신고와 부패신고에 해당한다고 보았으나 “유 전 심판관리관이 주장하는 불이익은 ‘공익신고자 보호법’(이하 ‘보호법’)상 불이익조치 유형에 해당하지 않거나, 공익·부패신고와의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주장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살펴 보자.​

첫째, 보호법상 불이익조치의 유형에 해당하는지 살펴보자.

불이익조치는 보호법 제2조 제6호 가목에서 자목까지 총 9개 유형이 열거되어 있다. 유 국장은 작년 10월10일에 ‘직무정지’를 당했다. 이것은 위 조문의 다목에 열거된 “직무 미부여”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마목의 “예산 또는 인력 등 가용자원의 제한”이나 “그 밖에 근무조건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차별 또는 조치”에 거의 확실히 해당한다. 따라서 유 국장이 당한 ‘직무정지’ 조치는 법상 불이익 조치라고 보아야 한다.​

둘째, 인과관계의 가능성을 살펴보자.

보호법 제20조 제1항은 “신청인이 공익신고 등을 이유로 불이익조치를 받았다고 인정될 때” 보호조치 결정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권익위가 아마도 인과관계 운운하는 이유는 “공익신고 등을 이유로”라는 요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유 국장은 내부고발자다. 즉 내부에서 자신이 근무하는 조직의 비리를 고발한 공익신고자인 것이고 이 점은 이미 권익위도 인정한 바다. 그런데 어느 조직이 미운털 박힌 내부고발자에게 “너는 공익신고를 했기 때문에 내가 불이익조치를 하겠다”라고 순진무구한 방식을 택해서 보복하겠는가? 따라서 이 인과관계는 한국 사회의 상식에 따른 개연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마땅하다.​

보호법도 당연히 이럴 가능성을 예측하고 제23조에 이에 대한 보완 규정을 뒀다. 즉 겉으로 보기엔 다른 이유로 불이익조치를 받았다 해도, 몇 가지 경우에 해당하면 그 인과관계를 “해당 공익신고 등을 이유로 불이익조치를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익신고자 등을 알아내려고 하거나”(제1호), “공익신고 등이 있은 후 2년 이내에 불이익조치를 한 경우”(제2호) 등이 그런 추정 사유다.​

유 국장의 경우는 당연히 이들 사유에 해당된다. 권익위가 인정한 공익제보인 검찰 수사 협조는 2018년 6월에서 7월 사이에 있었다. 공정위가 검찰 수사 협조자를 색출하려고 했는지는 추가적인 진상규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적어도 확실한 점은 유 국장에 대한 불이익조치인 ‘직무정지’는 공익신고 후 2년 이내인 같은 해 10월에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직무정지는 공익신고 때문에 받은 불이익조치로 추정되고, 별도의 반증이 없는 한 권익위는 제20조 제1항에 따라 유 국장에 대해 ‘반드시’ 보호조치 결정을 하였어야 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쟁점은 추정을 뒤집을 정도의 반증이 있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공정위의 주장에 따르면 유 국장에 대한 직무정지는 소위 ‘갑질 신고’ 때문에 내려진 것이다. 그렇다면 권익위가 유 국장의 보호조치 신청을 기각하기 위해선 공정위가 권익위 조사 과정에서 유 국장이 저지른 명확한 ‘갑질 증거들’을 반증으로 제시했고, 권익위는 이런 반증이 보호법 제23조의 불이익조치 추정을 뒤집기에 충분할 정도라고 판단했어야 한다.​

과연 권익위는 이런 반증에 설득당해서 불이익조치 추정을 뒤집은 것일까?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럴까? 권익위가 보도자료에서 그렇게 자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인용한 권익위의 4월30일자 해명성 보도자료 제2쪽의 가장 마지막 꼭지를 보면 공정위 직원의 갑질 신고로 인해 직위해제 등이 된 부분에 대해서는 “별도 조사를 통해 신고로 인한 불이익인지 여부에 대해 판단할 예정”이라고 나와 있다. 이 말은 적어도 한국 사회의 상식으로 판단하자면 ‘갑질 신고를 이유로 한 불이익조치가 정당한 근거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으니 더 조사해 보겠다’ 정도로 해석해야 한다. 그렇다면 공정위는 위의 추정 규정을 뒤집을 정도로 명확한 갑질 증거를 제시했고, 권익위가 이에 충분히 설득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이 말의 함의는 간단치 않다. 권익위가 공익신고를 인정하고, 공익신고자에 대한 불이익조치가 있었음을 뻔히 보면서도 명확한 반증도 없이 보호법상의 인과관계 추정규정을 위배하여 결과적으로 필수적으로 내려야 하는 보호조치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는 유 국장에 대한 이번 정부의 결정들이 공정하지 않다 생각한다. 이미 인사혁신처가 성신양회 과징금 부당감경 사건에서 주의 조치를 받은 데 이의를 제기한 유 국장에게 ‘당신은 계약직이니 징계 처분도 불이익한 처분이 아니다’란 논리로 기각하여 판단을 회피한 점도 그렇고, 권익위가 앞뒤 안 맞는 횡설수설을 내세워 보호신청을 기각한 점 등이 그 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리트머스 시험지는 국회가 작년 12월8일에 성신양회 사건과 관련하여 공정위의 사후조치가 적정했는지를 감사해 달라고 감사원에 요구한 점뿐이다. 왜냐하면 유 국장은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이제까지 알려진 바와는 제법 다른 여러 정황을 밝혔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유 국장을 정확히 조사해서 이런 점의 진위를 밝혔는지 두고 볼 일이다. 물론 국회가 이번 국정감사 기간 동안 국가기관의 부패와 직무유기 가능성을 철저히 따져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출처 및 기사 원문]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5092031005&code=990100#csidx542a1f1f8a320d9bf637288db1c4f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