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 공개정보

[송곳과프리즘]200710_기본소득 논쟁에 부쳐: 기본소득론의 분배정의와 실천원칙

2020년 07월 10일

기본소득 논쟁에 부쳐: 기본소득론의 분배정의와 실천원칙

 

김찬휘 (청년플랫폼 위드위드 대표)

 

 

“보수가 지향하는 가치인 자유는 말로만 하는 형식적 자유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전혀 의미가 없다”면서 “실질적 자유”와 “물질적 자유”를 부르짖은 6월 3일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 대표의 발언 이후, 기본소득은 여야로 나뉜 정치 지형을 허물어 버렸다.

 

같은 ‘보수’ 진영으로 분류되는 홍준표 의원이 “기본소득제의 본질은 사회주의 배급제도”라고 비난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본소득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훨씬 더 정의롭다”고 비판한 반면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청년→농민→농촌 순으로 도내의 기본소득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민주당 계열의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는 보고서를 내고 “기본소득은 증세만으로는 재정 실현 가능성이 낮고 기존 복지제도와 통폐합돼 실질적인 복지혜택을 오히려 하향 평준화시킬 수 있다”며 “고용보험 및 실업부조를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적 연구자와 연구소들도 기본소득 지지자와 ‘복지국가’ 지지자로 나뉘어서 치열한 논쟁을 개시하였다.

 

소위 ‘진영논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런 광경이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원래 새롭고 강력한 사회적 아이디어는 기존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로질러서 지지자를 얻는 법이다. 그리고 그럴 때에만 비로소 그 아이디어는 진정한 ‘물질적 힘’을 얻는다. 기본소득이 지금 그렇다.

 

기본소득이 실현 가능한 정치적 의제로 받아들여지는 지금 기본소득이 지향해야 할 대원칙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첫째, 기본소득은 기존의 사회적 복지, 특히 취약 계층의 혜택을 줄이면서 도입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이미 2016년 서울에서 열렸던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대회에서 공식 결의된 것으로서, 결의안은 “기본소득 도입이 취약층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면 그런 기본소득은 반대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소득층에게 지급되던 복지급여를 빼서 재원을 조달하는 ‘안심소득제’ 등은 결연히 배격해야 한다.

 

성신여대의 박기성 교수가 주장하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지지하는 안심소득제는 현재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 주거급여, 자활급여, 그리고 국세청의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을 폐지하고, 그 재원으로 안심소득제를 새로 도입하는 계획이다. 안심소득제가 이런 식의 재원 구상을 갖고 있으면서 “소득이 적은 이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정의 실현”(오세훈)이라고 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것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은 전혀 다르게 생각한다. 생계급여만 예로 든다면 1인 가구 최대 52만7천원을 지급하는 생계급여는 그 액수를 상회하는 기본소득이 도입되기 전에는 폐지될 수 없으며, 폐지의 과정도 기초연금으로 “줬다” 생계급여에서 “뺐는” 식의 전액 대체가 아니라 기본소득 액수의 일부분만을 대체하면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한마디로 기본소득의 주요 재원은 기존 복지의 정비나 ‘간소화’에서 나올 수 없다.

 

 

둘째, 기본소득은 강력한 소득재분배 기제로 작동해야 하며, 그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증세가 동반되어야 한다. 1995년 소득 상위 10%가 29%의 소득을 가져가던 한국 사회는 2013년 45%를 가져가는 사회로 변모하였다.(2016 IMF) 또한 2016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상위 0.1%의 평균 근로소득은 6억6천만 원인데 반해, 배당소득은 8억1천만 원, 종합소득은 25억8천만 원을 돌파하였다.

 

소득불평등은 결과일 뿐, 그 기저에는 자산불평등이 있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소득 격차가 크므로, 모든 근로소득자에게 ‘정률’로 기본소득 분담금을 과세하기만 해도 커다란 소득재분배 효과를 갖는다. 더 나아가 자산과세를 기본소득의 주요 재원으로 삼는다면 국민 절대 다수가 기본소득제의 분담금보다 수혜액이 크게 될 것이다.

 

그런데 ‘복지국가론자들’은 안심소득론자들과 의도는 다르겠지만, ‘예산제약’을 근거로 삼아 기본소득을 도입한다면 ‘복지제도’가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들과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복지 효과가 현저하게 작고, 사회적 약자들이 주로 받던 공공복지를 회수해 부자들을 포함한 모두에게 똑같이 배분하는 것이라 역진적 재분배를 초래할 것” “기존 복지의 강화와 기본소득은 함께 갈 수 없다” (이상이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긴급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에 반대했던 홍남기 부총리도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소득 없는 사람들, 기초생활이 안 되는 사람들에 대해 보장을 해 주는 게 우선” “재원이 있다면 더 어려운 계층에 선택적,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게 돈의 쓰임새가 더 효과적일 것”

 

선별된 소수의 취약 계층에 집중된 복지 제도는 그 규모를 일정 규모 이상으로 키울 수 없다. 세금으로 그 복지 제도를 떠받치고 있는 순부담자들이 반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 복지 제도의 사명이라며 ‘인도주의적’ 언사를 늘어놓는 사람들이 도달하는 곳은 항상 쥐꼬리만한 ‘잔여적 복지’일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순부담자들의 저항을 자극하지 않도록 수혜대상자의 규모는 가급적 최소화해야 한다. 저소득층을 강조할수록 결국은 저소득층에게 불리해지는 이러한 상황을 Joakim Palme와 Walter Korpi는 ‘재분배의 역설’(1998)이라고 불렀다.

 

그에 반해 국민 절대 다수가 순수혜자가 되는 기본소득은 ‘증세 거부감’에 대한 훌륭한 처방이 된다. 1회성에 그쳤지만 긴급재난지원금이 준 강력한 계몽 효과를 생각해 보라. 많은 국민들의 세금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증세 없이도 기본소득이 가능하다는 모델이 누굴 위해 필요한 것인가? 기본소득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것이지 불의의 세상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기본소득은 계속 확대되어온 자산 격차와 소득 격차를 줄이고 한 사회의 부를 함께 누리기 위한 ‘21세기형 복지의 재구성’이다.

 

셋째, 기본소득은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영세자영업 등 불완전·불안정 노동의 기본 안전판 구실을 하며 노동시간 단축과 시간 주권의 확대로 귀결되어야 한다.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위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보험 확대, 즉 ‘전취업자’ 고용보험은 무조건 필요하다. 실업이나 수입의 현격한 감소, 그리고 직업훈련, 구직지원 등을 위해 ‘전취업자’ 고용보험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고용보험에 따른 실업급여는 1) (최대-최소 규정은 있지만) 고용시의 소득 격차를 반영하며 2) 현재 최대 9개월 지급될 뿐이어서 그 이후의 기간에 대한 보장이 없으며 3) 그 이후의 기간을 유럽 선진국처럼 실업부조로 보장한다면 실업이 장기화되는 ‘실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더 중요한 점은 고용보험이 있다고 해서, 불완전·불안정 노동자들이 취업 기간 동안에 겪는 빈곤과 불안정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20세기 유럽에서 발전된 사회보험 제도는 고도성장과 ‘완전고용’, 노동자 간에 큰 임금격차가 없는 ‘질 좋은’ 일자리, 그리고 가장 혼자 벌어 전 가족이 생활 가능한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에 기초했다. 실업은 일시적인 것이고 간단한 재훈련을 통해서 노동시장 복귀가 가능했다. 그리고 노동자의 생활조건은 비슷하고 급여로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했다. 일시적인 실업에 대비한 고용보험과, 질병과 장애 및 노령에 대비한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 체계를 촘촘히 짜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이제는 표준적 고용관계는 해체되고 노동시장은 ‘이중화’되어 질 좋은 일자리는 소수에 불과하다. 완전고용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것으로서 실업/반실업이 일상화되었다. 온 가족이 모두 노동시장에서 일을 해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AI 발전과 소위 ‘4차산업혁명’은 언젠가는 인간 노동을 줄일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신통치 않은 질 낮은 일자리들을 양산하면서 생계를 위한 노동시간을 늘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저임금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소득 보장은 물론이거니와, 질 낮은 노동을 선택하지 않을 자유, 부당한 노동을 거부할 자유가 늘어날 것이다. 기본소득액이 충분하면 충분할수록 이 자유의 폭은 커질 것이며, 평생 일하다가 죽을 자유 대신에 의미 있는 일을 하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 주권’이 신장될 것이다. 이것은 임금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가사 및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해방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넷째, 기본소득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보편적인 사회서비스 강화와 사회보험 개선을 동반해야 한다. 보편적, 무조건적 현금지급으로서 기본소득이 갖는 분배정의의 의미와 효과가 크다고 해서 그것으로 절대 충분하지 않다. 기본소득 계획은 복지 비용을 ‘절감’하고 복지 제도를 ‘간소화’하기 위한 자본의 요구, 관료의 요구를 절대적으로 배격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자연과 공존하면서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해 기본소득은 다른 복지 제도들과 더욱 적극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첨부: ED200710_기본소득_논쟁에_부쳐_기본소득론의_분배정의와_실천원칙(김찬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