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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210907_[김경율의 세상 돋보기] 현금열전(列傳)

2021년 09월 7일

[김경율의 세상 돋보기] 현금열전(列傳)

 

얼마 전 고3 딸아이를 위해 남대문시장에 있는 약국에 싸게 판다는 영양제를 사러 갔다. 영양제를 고른 후 신용카드를 내놓은 나에게 들려온 대답은 단호했다. “카드 결제 안 됩니다. 현금만 받아요.” 약간의 실랑이 끝에 지갑에 있는 현금을 모두 털어내고 “나머지는 카드로 해주세요”하는 요구에도 끄떡없었다. (중략) 결국 사려고 했던 영양제 일부를 덜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 약국이 현금만을 원했던 것은, 이에 따른 매출 실적이 누락되고 따라서 관련된 세금을 모두 탈루할 수 있어서 일 것이다. 거래의 파생 효과는 약국이 약을 사 올 때도 미칠 것이고(매출이 탈루되었으니, 대응되는 매입도 숨겨야 한다. 제약회사 혹은 도매상으로부터 구매할 때 역시 현금으로 구매할 것이다), 약을 사고판 마진은 약국의 주인집과 제약회사 사장의 안방 금고에 고스란히 넣어질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FIU(금융정보분석원)를 통해 현금 입금과 출금에 대해 통제가 되고 있어서 현금 뭉텅이를 금융기관에 맡기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6월 10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5만원권 발행액은 6조3천238억원이다. 반면 시중에 유통되다 한국은행 금고로 돌아온 5만원권 환수액은 1조2천926억원에 그쳐 환수율은 20.4%다. 5만원권 10장을 찍어내면 2장만 돌아온 꼴로 5만원권이 처음 발행된 2009년 6월 이후 분기 기준으로 가장 낮다고 한다. 이를 누적 기준으로 본다면 5만원권은 2009년 6월 이후 235조원이 발행되었는데, 이 중 113조원은 한국은행으로 다시 환수됐지만, 그 나머지 122조원만이 시중에 남아 유통된다. 5만원권이 없었을 때는 화폐유통액이 GDP의 3% 선이었는데, 현재 이 비율은 약 6% 대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신용카드, 전자화폐 등을 통한 거래가 확대되는 것을 고려하면 회수되지 않는 현금 중 상당액은 집안 금고 속에서 잠자고 있을 것이라 충분히 짐작이 간다. 이는 정기예금 금리조차 0%대인 것에 비추어보면, 향후 증여세 등이 과세되지 않고 자식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저장수단으로서 현금 보유가 기회손실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리하자면 현금을 주고받는 것은 물품과 용역 거래 시 거래가 은폐되어 부가가치세, 법인세 및 소득세 등 모든 세금을 탈루할 수 있고, 또 부를 이전할 때 부과되는 증여세 혹은 상속세를 회피할 여지를 두게 돼 부자들로서는 훌륭한 거래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탈세 수단을 넘어 현금은 뇌물, 도박 등 위법한 거래의 매개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거래를 하면서 당장 추적될 수 있는 수표 혹은 계좌 거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이와 같은 사례 중 하나가 정권 초기부터 줄곧 오르내리는 대형 금융 사기 사건 중 하나인 밸류인베스트코리아 건이다. 투자자들로부터 벤처 등에 투자한다고 자금을 모은 후 정작 그 돈을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금 이체 후 곧바로 현금 등으로 인출하거나, 개인들에게 이체한 것이다. 필자가 소속된 단체에서는 약 158억원에 달하는 금액이 현금 등으로 인출된 것을 확인하여 국세청에 탈세 제보한 바 있다. 출금 계좌와 일자 그리고 금액을 일일이 열거한 만큼 과세하는 데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4월에 제보하였음에도 탈세제보자료관리규정에서는 “처리기간이 탈세제보 접수안내 통지일로부터 60일 이상 소요될 때는 처리담당공무원의 소속과 성명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처리에 상당 시간이 소요될 수 있음을 제보자에게 중간통지”하여야 함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다른 각종 금융사기 사건과 마찬가지로 자금 추적이 지지부진하다.

또 하나 현금과 관련하여 언급하고 싶은 사건은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재산신고내역이다. 2019년과 2020년 신고에 따르면 각각 2억원과 3억 2천500백만원의 현금을 보유한 것으로 신고하였다. 수많은 공직자의 재산신고내역을 검토했던 경험에 비추어 이처럼 많은 현금을 신고한 사례를 쉽게 접해 보지 않았다. 줄곧 성남시장에 취임한 이후 공직에 머물러 있는 이가 현금을 이처럼 많이 두고 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2018년 이전에는 0으로 신고하였다) 사실 공직자가 현금을 만드는 것도 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또 현금을 넣고 빼고 하는 것은 FIU(금융정보분석원)에 포착돼 당사자로서도 피곤한 일이다. 그럼에도 거액의 현금을 자진신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현금은 실제 있는 것일까? 있다면 어떤 경로로 해서 취득하였을까? 궁금하다.

한편 이재명 지사는 본인 소송과 관련하여 무료 변론 여부와 적정가액의 변호사비를 지급하였는지 여부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여러 법조계 인사들은 관행을 언급하며 논란을 가중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필자의 눈에는 재산 신고 내역 중 현금 신고액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있을 수 있는 충격에 대해 훌륭한 알리바이가 될 수 있을뿐더러 완충재로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둑판 위 절묘한 곳에 놓여 있는 수(手)이다.

김경율 회계사•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

원문출처: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238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