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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인의 경제노트] ‘부러진 화살’과 공정위

2019년 04월 11일

[전성인의 경제노트] – 경향신문 오피니언

‘부러진 화살’과 공정위

 

나는 20년 넘게 언론에 칼럼을 기고했다. 칼럼을 쓸 때 가장 어려운 경우는 사실관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 사건을 언급해야만 할 때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말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그럼에도 언급을 해야만 하는 경우란 그 사건 자체가 매우 중대하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가 그렇다. 미국에 앉아서 당사자 간 서로 주장이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 의견을 말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처럼 칼럼을 쓰는 이유는 이 사안 자체가 매우 중대해서다. 지금부터 시작한다.​

지난 4월2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유선주 공정위 심판담당관(이하 ‘유 국장’)을 직위해제했다. 이유는 내부 직원을 상대로 한 ‘갑질’ 의혹에 일부 혐의가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사혁신처에 중징계 의결도 요청했다. 중징계라…. 이것은 파면, 해임, 강등, 정직 등을 말한다. 판사 출신 ‘굴러온 돌’인 유 국장이 중징계를 당할 정도로 ‘갑질’을 심하게 했다? 쉽지 않은 그림이다. 물론 공정위도 이 사건이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것을 짐작하고 있을 것이고 나름 이런저런 내부 검토를 거쳐서 ‘방어’에 자신이 있으니까 중징계 요청이라는 칼을 뽑았겠지만, 한국 사회를 오래 살았던 나로서는 분명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점은 아직 사실관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 국장 사건의 본질은 유 국장의 ‘갑질’이 아니다. 언론에 보도된 공정위의 행태에 관한 유 국장의 주장(또는 내부고발)의 진실 여부가 이 사건의 핵심이다. 유 국장은 몇 건의 공정위 사건에 대해 이런저런 주장을 했지만 그 요지는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공정위와 기업 간의 유착관계가 매우 심하고, 그 결과가 공정위의 심결을 부당하게 왜곡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통로는 공정위의 퇴직관료와 이들을 영입한 대형 로펌이다. 이 통로는 구체적인 사건에서 공정위 현직관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통로를 봉쇄하고자 하는 노력에 대해 공정위가 조직 차원에서 반발하고 있다.”​

유 국장의 주장에 담긴 내용은 대단히 위중한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유 국장의 주장은 개별적(특정 사안처리의 문제점)으로 또는 일반적(공정위 조직의 일반적 운영 행태의 문제점)으로 사실일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사실관계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명확하게 가타부타하기 어렵지만, 일반적 현황에 관한 지적은 개연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 국장의 주장에 대한 공정위의 반론은 무엇인가? 별것이 없다. 우선 개별 사안별로 보자. 성신양회 사건은 공정위 현직관료가 적자를 이유로 감경 주장을 하라고 ‘안내’하고, 이에 따라 대형 로펌 소속의 공정위 퇴직관료가 이 안내를 ‘실행’에 옮겨 437억원의 과징금을 반토막 내어 218억원을 부당하게 감경받은 사건이다. 팩트는 재무제표 허위. 그래서 유 국장의 건의에 따라 과징금을 재부과하여 승소.​

그럼 이 사건은 어떻게 처리했어야 할까? 공정위 담당자 문책, 공정위 현직관료와 로펌 변호사(특히 전관 출신) 간의 의사소통 통제를 위한 윤리규정 제정 등 재발방지 대책 마련, 유 국장 포상…. 대략 이런 식의 뒤처리가 상식이다. 그런데 공정위 담당자와 유 국장에게 동시에 ‘주의’ 처분이 내려졌다. 시쳇말로 “똑때기 하라”는 뜻이다. “성실의무를 다하지 못해서 관리감독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다. 재무제표가 허위였더라도 그것을 밝혀낼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다른 말 못할 사연이 더 있지 않는 한) 과도했다. 그렇다면 허위 재무제표에 근거해서 최종적으로 과징금 감경을 의결한 2016년 5월 공정위 전원회의 참석자들은 아무런 임무해태가 없었다는 것인가?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표시광고법 위반 처리 문제도 있다. 공정위는 2011년 이후 가습기 살균제가 안전하다는 취지의 허위 광고를 한 SK케미칼, 애경, 이마트의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에 대해 SK케미칼은 조사도 하지 않았고, 애경과 이마트에 대해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팩트는 물론 가습기 살균제는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도 공정위가 잘못했다.​

그럼 공정위의 반론은 무엇인가? 공정위는 지난 4월9일자로 “사실은 이렇습니다”라는 반론을 제시했는데, 관련 내용은 “법령 등의 절차에 따라 적정하게 처리”했다는 것이다. 다만 “처리방향 및 조치수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논란의 핵심이 ‘절차적 정당성’에 관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의혹의 핵심은 ‘공정위가 부당하게 이들 기업을 봐준 것 아니냐?’ 그것이다. 그런데​ 공정위는 딴청을 피우고 있다. 공정위는 지금이라도 왜 SK케미칼은 조사도 하지 않았고, 애경과 이마트에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는지 그 “처리방향과 조치수준”의 적법성과 적정성에 대한 적극적 반론을 내놓아야 한다.​

어떤 이는 유 국장이 독불장군이라거나 조직 부적응자라는 점을 부각시켜 그 주장의 개연성과 중대성을 폄훼하려고 한다. 유 국장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대인관계가 순탄치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점은 이 사안의 본질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우리는 도덕군자나 열녀 춘향을 공익제보자로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심지어 다른 사안에서 범죄자라 할지라도 그 고발의 내용이 공익과 관련된 것이면, 그 제보 내용과 관련하여 불이익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불현듯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주인공인 성균관대 수학과 김명호 교수가 떠올랐다. ‘석궁테러’라는 무시무시한 낙인으로 지금은 회자되지만 이 사건의 본질은 ‘입시 비리를 고발한 내부자에 대한 재임용 탈락이라는 부당한 보복’이다. 이 불행한 사건이 벌어졌던 1995년부터 1996년 사이에, 그리고 그 이후 1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정의롭게 처리하지 못했다. 이제 본질적으로 동일한 사안이 다시 나왔다. 우리 사회는 20여년이 지난 지금 이 문제를 성숙하고도 정의롭게 처리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진상규명이 먼저다.

 

[출처 및 기사 원문 링크 : 경항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4112047015&code=990100#csidx407ed745fae7107acbf4696698d74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