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등장한 “한국형 IFRS 도입” 주장,
한국 회계 투명성을 일본, 중국보다 못한 후진국 수준으로 되돌리려는 위험한 발상
조헤경 경제민주주의21 대표
오는 8월 15일 삼성생명의 반기보고서가 공시됩니다. 이번 반기보고서에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삼성화재 자회사 편입에 따른 지분법 적용 여부와 삼성전자 주식 매각에 따른 일탈회계 유지 여부에 관해 국제회계기준 원칙 준수 여부에 대해 외부감사인의 검토 의견이 담겨야 합니다. 삼성생명 회계처리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온 경제민주주의21은 지난 8월 6일 금감원에 삼성생명의 회계처리에 관해 회계부정 신고서를 제출하고 감리를 요청하였습니다. 이를 놓고 저명한 국내 경영학자가 언론기고에서 “시민단체 월권”이라 비판하며 “IFRS를 따르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언론 기고는 https://bit.ly/45uwvgE)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는 IFRS 도입 이전 우리나라 회계투명성이 세계 최하위권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2017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제경쟁력 평가 중 회계 적정성 지수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63개국 중 꼴찌였습니다. 2016년 61위에서 더 떨어져 최하위를 기록하는 낯 뜨거운 일이 있었습니다. 국내 기업 회계 신뢰도가 일본이나 중국보다 못한 수준(자세한 내용은 경민21 현안비평 250808 https://bit.ly/47nxRMD 참조)이라는 사실도 매우 충격적입니다. 그러나 IFRS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이 성과를 거두어 2020년 46위, 2021년 37위까지 순위가 상승했습니다. 단숨에 개선되기 어려운 일이라 아직 갈길은 멀지만 IFRS 채택이 국내 회계제도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대한민국의 회계투명성이 세계 밑바닥에서 맴돌았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국내 회계기준이 재벌 기업의 입맛에 따라 자의적으로 운영되고, 분식회계나 이익조정이 용이했던 환경 때문입니다. 재벌 총수의 사익을 우선시하는 회계처리 관행이 뿌리깊게 박혀있고, 최근 삼성생명 회계처리 논란처럼 특정 재벌 기업의 이해관계에 맞춘 회계제도 운영을 감독당국이 눈감아 주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회계기준 자체도 느슨하기 짝이 없어 회계부정과 반칙이 횡횡해도 법원에서는 죄를 입증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였습니다.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사태와 삼성바이로직스 회계부정 사건에서 전부 무죄 판결이 보여주듯이 회계부정에 대한 관대한 문화를 청산하지 못한게 우리 현실입니다.
한국이 2011년부터 K-IFRS(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를 도입하여 국제기준을 충실히 반영하려 노력해 온 것은 이러한 현실을 타파하여 국내 회계의 불투명성을 극복하기 위해서입니다. IFRS는 한국 기업들의 재무제표가 국제적으로 비교가능해지고, 해외 투자 유치에 유리한 신용도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한국 자본시장의 선진화, 요즘 유행하는 밸류업의 필수 인프라입니다. 삼성생명 회계처리를 놓고 또다시 불거진 회계 스캔들은 IFRS 자체가 아니라 삼성생명과 감독기관이 IFRS 원칙을 훼손하려 한 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해놓고도 이를 온전히 지키지 않으려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지, IFRS 체계 그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닙니다.
국제회계기준을 흔들고 후퇴시키자는 주장은 단기적으로 일부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할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국가와 모든 시장 참여자에게 해가 되는 선택입니다. 기업 회계는 기업의 사유물이 아니라 사회적 공기(公器)입니다. 삼성 등 일부 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회계기준을 좌지우지하는 관행이야말로 우리 회계투명성을 갉아먹은 주범이었습니다. 한국 회계의 신뢰 회복과 발전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투명한 정보공개에 달려 있으며, IFRS는 그 핵심 토대입니다. 학계와 산업계가 함께 IFRS의 정착과 올바른 적용을 위해 노력해도 모자랄 판에 IFRS를 마치 대한민국의 이익에 역행하는 것처럼 거짓 주장을 퍼뜨리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신뢰받는 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으려는 그 어떤 시도와 방해 공작을 경제민주주의21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단호히 맞설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