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후보의 ‘무조건’ 성장론에 대한 단상
내란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3년 만에 치러지는 조기 대선 레이스가 본격 궤도에 올라섰다.
국힘의힘 예비후보들은 죽은 권력을 놓고 진흙탕 육탄전을 벌이느라 정신이 팔려있어 들을 만한 얘기가 없다. 당내 경선뿐만 아니라 본선에서도 딱히 적수가 없는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직접 페이스북을 통해 연일 굵직한 공약을 쏟아내며 정책 행보에 집중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일제히 ‘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서인지 승자의 여유가 느껴질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
이재명 후보가 특별히 공을 들이는 중도 표심 굳히기 전략은 ‘무조건’ 성장론이다. 성장 위기에 처한 한국경제가 지금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성장이라는 신박한 주장은 고양이 색깔을 따지지 않는 흑묘백묘론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흑묘백묘는 문재인 정부의 어설픈 소득 주도 성장론과 윤석열 정부의 어리석은 건전 재정론을 겨냥한 것으로, 헛된 이념을 쫓다가 성장을 놓쳐버린 무능함을 빗댄 표현이다.
이재명표 ‘무조건’ 성장론의 핵심은 민간이 휘청대고 있으니, 정부의 힘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과감하게 재정을 투입하여 불완전한 시장을 정부가 선도해야 한다는 이재명 후보의 철학과 소신이 깔려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기본소득론이 헛된 이념으로 취급되어 공약에서는 제외되었지만, 정부가 전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기본소득 구상이야말로 정부 주도 무조건 성장론의 최고봉이라고 봐야 한다.
정부의 힘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정부 지출을 늘리면 된다.
이재명 후보가 내놓은 경제정책 공약을 보자. 민생지원금, 지역화폐, 기본대출에서부터 100조 원 AI 투자와 K-엔비디아 육성, 북극항로 개척과 대륙철도 연결, 부·울·경 30분대 생활권 및 호남권 메가시티 구축과 같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출 계획을 담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집권에 성공한다 해도 ‘무조건’ 성장론의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문재인 정부는 야심 차게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정부의 힘을 동원했지만 용두사미였다. 윤석열 정부는 애초부터 정부의 힘을 배척했고, 집권 내내 재정 건전성만 부르짖으며 세월을 허비했다. 이재명 후보의 공약을 보면 정부의 힘을 믿고, 문재인 정부보다 훨씬 더 공격적으로 재정을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하다.
경기침체기에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려 부족한 수요를 떠받치는 건 당연하다. 정부가 돈을 쓰는 만큼 민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힘을 무리하게 쓰면 인플레라는 무서운 부작용을 부른다.
윤석열 정부한테서 물려받은 105조원의 ‘통 큰’ 적자 탓에 새 정부가 재정을 동원하는데 출발부터 가시밭길이다. 더구나 증세는커녕 감세 선물 세트를 약속한 상황에서 무슨 수로 돈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인지, ‘묻지마’ 성장론이 화려해질수록 의구심도 커진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재정의 힘에 대한 과신은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과욕초화의 경각심을 놓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