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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의 약탈적 경영권 인수, 원천 금지해야

2025년 03월 29일

사모펀드의 약탈적 경영권 인수, 원천 금지해야

조혜경 경제민주주의21 대표

 

홈플러스 기습적인 회생신청으로 사모펀드 먹튀 논란이 또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번엔 양상이 좀 다르다. 과거에는 론스타, 소버린, 엘리엇, 메이슨과 같은 해외 사모펀드의 약탈적 ‘국부 유출’과 파렴치한 탈세가 먹튀 논란의 중심이었다면, 이번엔 ‘대한민국 정부가 육성한 자랑스러운 산업 중 하나인 토종 사모펀드 산업 1세대’ MBK가 주인공이다.

선제적 기업회생이라는 전례 없는 MBK의 출구전략이 불러온 홈플러스의 존립 위기는 피인수기업의 살을 갉아 먹는 LBO의 약탈적 경영이 낳은 예고된 참사다. 2019년 투자금 회수 목적의 홈플러스리츠 상장 시도가 국내외 기관투자자의 외면을 받아 불발로 끝났을 때 이미 불길한 징조가 감지됐다.

비우량자산 떠넘기기 의혹을 불러온 MBK 회장의 탐욕이 상장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됐고, 투자금 회수에 실패한 MBK는 부동산 자산을 밑천으로 하는 차입 경영에 올인한 결과, 홈플러스의 부채비율이 3200%까지 치솟았다. 그럼에도 자본시장 참가자들은 다가오는 파국을 모른 척했고, 홈플러스의 빚더미 경영에 올라타 떡고물 챙기기에 급급했다.

이번 홈플러스 사태는 국내 자본시장의 자정능력 부재와 허울뿐인 자율규제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사모펀드의 먹튀자본 이미지에 채권 사기 판매도 서슴지 않는 악질자본 이미지까지 덧붙여졌다.

◆사모펀드 먹잇감 된 기업…현금인출기로 전락

기업을 파탄으로 내모는 약탈적 기업사냥은 국내 자본시장의 고질적 문제다. 멀쩡한 코스닥 상장사들이 무자본 M&A의 먹잇감으로 난도질을 당해 부도 처리되거나, 상장 폐지되는 일이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다.

저평가된 기업을 싸게 사서 기업가치를 높인 다음 비싸게 되파는 위험자본 공급자로서 사모펀드의 순기능은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순진한 희망에 가깝다. 현실에서는 피인수기업의 현금흐름과 부동산 자산을 담보로 웃돈을 얹어 비싸게 산 다음 투자금 회수를 위해 기업을 현금인출기로 이용하는 약탈적 사모펀드가 판을 치고 있다.

사모펀드 운용사가 총괄·기획하는 경영권 인수시장에는 최적의 먹잇감 발굴과 사냥에 필요한 실탄을 제공하는 조력자가 필요하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외 기관투자자 참여 여부가 머니게임의 시작과 성패를 좌우한다.

한배에 올라탄 사모펀드 운용사와 기관투자자들의 관심은 오로지 가급적 이른 시일에 투자 수익을 챙겨 나가는 것이다. 기업의 경쟁력과 미래는 중요치 않다. 임직원, 채권자, 협력업체, 지역사회 등 지분 투자자와 경영진을 제외한 나머지 이해관계자는 안중에 없다.

시한이 정해진 지분투자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사모펀드가 이익을 실현하려면 기업과 주요 이해관계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자본시장에서 환호를 받고 머니게임의 실탄을 공급하는 조력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정부의 사모펀드 편애…약탈적 투자 힘 실어줘

MBK의 말처럼 곳곳에서 사모펀드의 폐해가 속출해도 토종 사모펀드 육성과 성공에 진심이었던 정부의 비호 아래 업계는 성장 가도를 달려왔다.

노무현 정부의 사모펀드 도입과 동북아 금융허브론, 이명박 정부의 자본시장 선진화, 문재인 정부의 사모펀드 규제 완화와 증시 활성화 정책, 윤석열 정부의 코리아디스카운드 해소를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투자로 부자되기’ 지원 정책이 국내 사모펀드 산업의 성장동력이었다.

사고가 나면 사모펀드 투자자 보호제도 강화를 약속하면서 사모펀드 업계의 요구대로 규제를 더 풀어주는 결정을 내렸다. 사모펀드 업계의 편에 서서 모든 위험을 통째로 떠안는 기업과 나머지 이해관계자들은 무시했다. 기업을 살리는 생산적 투자가 아니라 기업을 갉아먹는 약탈적 투자에 힘을 실어준 정부와 정치권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사모펀드 규제 무풍지대…이제 끝내자

기업의 이익보다 투자자의 이익을 우선하는 사모펀드의 경영권 인수 전략 자체에 내재한 위험을 정부는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규제 무풍지대에서 아무런 사회적 통제 없이 성장해 온 사모펀드 산업은 역기능과 부작용이 사회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임계점을 진작 넘어섰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한계기업이 늘어나는 불경기와 기술혁신의 전환기는 곧 사모펀드의 시간이다. 피인수기업을 약탈하는 LBO의 먹튀 전략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규제가 시급하다.

그뿐만 아니라 사모펀드의 영향력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한국사회 저변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시내버스, 도시가스, 풍력·해상·열병합 발전, 지역난방, 폐기물 처리 및 재활용 등 우리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사회기반서비스 분야로 투자 영역을 넓혀온 결과다.

우리의 일상이 사모펀드 단기수익 극대화 전략의 볼모가 되는 것을 막으려면 진입장벽이 필요하다. 공공재 성격이 강한 산업이나 기업 인수 시 대주주 요건을 정해 엄격한 적격성 심사를 거치도록 하여 제동을 걸어야 한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사모펀드의 기업가치 제고 환상에서 깨어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