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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03_허상을 좇는 지역화폐 정책사업, 이제는 접어야

2024년 12월 3일

허상을 좇은 지역화폐 정책사업, 이제는 접아야 

 

조혜경 경제민주주의21  운영위원장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내년 예산 심사와 관련해 “가장 주력하고 있는 예산이 지역화폐 예산”이라고 밝혔다. 지역화폐는 기본소득과 함께 이재명 대표의 브랜드 정책으로 꼽힌다. 그러다 보니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물불 안 가리고 밀어붙이려 하고, 이에 맞서는 정부 여당은 물불 안 가리고 막아내려 한다. 이렇게 심각하게 정치적으로 오염이 되어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하다. 진영 싸움으로 전락한 지역화폐 정쟁은 누가 정권을 잡든 영원히 계속될 듯 싶다.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예산을 뿌렸으니, 누구에게는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 만으로 지역화폐 정책의 효용성 논란을 가라앉힐 수는 없다.

정부가 발행하는 지역화폐, 다른 나라에 없는 이색적인 정책

우리나라에는 정부와 지자체가 매년 예산을 들여 상품권을 발행‧보급하는 매우 독특한 정책이 있다. 2009년 발행을 시작한 온누리상품권과 1996년 도입된 지역화폐로 불리는 지역사랑상품권(원래 명칭은 고향사랑상품권)이 그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도 정부가 상품권을 발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국가적 경제위기, 대규모 자연재해, 사회경제적 재난 사태 등 비일상적인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으로 한시적으로 활용한다. 우리나라처럼 상시적인 정책사업으로 할인소비쿠폰을 전 국민을 상대로 유상판매하는 사례는 적어도 선진국에는 없다. 매우 이색적인 상품권 사업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비인기 정책이었다. 판매가 부진해 무용론이 우세했다. 그런 상황을 반전시킨 것은 문재인 정부가 국가적 차원에서 지역화폐 시장을 키우기로 작정하면서부터다. 중앙정부 예산이 불쏘시개가 되어 모든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역화폐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전국적 현상이 되었고 기존의 무용론은 무시되었다.

높은 할인율에 명운이 걸린 정부 상품권 시장, 인기몰이에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상품권 정책사업이 인기몰이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높은 할인율 덕분이다. 소상공인 지원, 지역경제 활성화, 전통시장 및 골목 상권 소비 진작 등 “착한” 명분을 뭐라 할 수 없지만, 착한 명분만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범용성이 낮은 상품권은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되는 불편한 지급수단이다. 그 불편함을 감내할 만한 충분한 유인을 제공해야 상품권 소비를 늘릴 수 있다. 즉, 할인율 수준이 정부 상품권 판매량을 좌우한다. 문제는 웬만한 할인율로는 “착한” 소비를 유인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소비자의 구매 의사를 결정하는 할인율의 최저 마지노선은 7%로 알려졌는데 판매량을 늘리려면 할인율을 더 높여야 한다. 2015년 892억원, 2016년 1,087억원에 불과했던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규모가 2022년 28.4조원까지 폭증하자 할인율 20% 특판이 등장했다.

눈먼 나랏돈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어 가능한 일이지 만약 민간업체였다면 머지포인트 사태처럼 망하는 건 시간문제다. 게다가 편의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카드형과 모바일형까지 출시하면서 운영비용이 급증하고 종이상품권과는 달리 민간 대행사가 필요해졌다. 지역화폐 운영사로 선정된 업체는 수조원 대에 달하는 선수금 수입으로 막대한 현금흐름을 확보하는 횡재를 얻었다. 가장 먼저 지역화폐 시장에 뛰어든 코나아이가 상장폐지 위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덕분이었다.

할인율의 함정, 상 테크 판을 키우다. 

지역사랑상품권의 인기 이면에는 “할인율의 함정”이 숨어있다. 상품권 구매를 유인하려면 할인율을 올려야 하고 할인율을 올리면 상 테크(상품권과 재테크의 합성어)라 불리는 부정 사용 유인도 덩달아 커진다. 정부 상품권 시장이 높은 할인율로 부풀려지면 “착한” 소비와 무관한 상 테크 시장이 번성한다. 실제로 정부 발행 상품권은 정기 예금보다 훨씬 높은 수익이 보장되는 신종 재테크 아이템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앞서 언급한 머지포인트 사태나 최근 위메프 사태에서 보았듯이 민간업체가 발행한 상품권은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될 수 있지만, 정부 발행 상품권은 그럴 위험이 전혀 없다. 안전할 뿐만 아니라 할인율도 더 높아 상 테크 아이템으로는 대적할 상대가 없다.

국정감사 시즌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는 “마늘가게 192억 상품권 깡, 쌀가게 41억 상품권 깡” 이런 일들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것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민간 전통시장법과 지역사랑상품권법에 미약하나마 부정 유통에 대한 처벌 규정이 있지만, 일일이 가려낼 수도 없을뿐더러 지자체장이나 정치인들에게는 상품권 정책이 생색내기와 치적 자랑에 안성맞춤이라 굳이 들춰낼 의지가 없어 상 테크를 묵인하고 있다. 2022년부터 중앙정부 예산이 큰 폭으로 줄었음에도 일부 지자체가 발행액을 더 늘린 것은 정치적 계산을 앞세운 결정이다.

상품권으로 망가지는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지역화폐를 바라보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시각은 상극이다. 2025년 정부가 제출한 지역화폐 예산은 0원, 이에 반발해 민주당이 행안위에서 단독 의결한 예산안은 역대 최고치인 2조원이다. 민주당의 주장대로 정부의 예산으로 연명하는 할인소비쿠폰이 위기의 전통시장과 자영업을 살리는 정책이라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상품권으로 산업기반이 무너진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지역사랑상품권,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 가맹점은 생활소비재를 판매하는 동네 가게나 편의점, 전통시장이나 상가 상점들이다. 생활소비재를 구매할 때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현금을 주고 구매한 상품권으로 지정 가맹점에서 사용한다고 해서 소비자의 구매력이 더 커지는 것도 아니고, 할인 혜택 때문에 소비가 더 늘어난다는 보장도 없다. 지역사랑상품권 때문에 식당이나 카페를 더 자주 방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품권을 구매했어도 다 사용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묵혀두는 경우도 허다하다. 상품권 구매가 소비 여력 증가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상품권의 경제적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다. 반면, 골목상권,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착한 소비와 전혀 무관한 상 테크 시장 활성화 효과는 분명하다. 정부 재정으로 안전한 상 테크 시장만 키우는 꼴이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인 2021년 지역사랑상품권 국비 지원액은 1조2522원으로 같은 해 여가부 예산 1조 2,325억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민주당이 단독 의결한 2025년 지역화폐 예산 2조원도 내년 여가부 예산 1조8163조원보다 더 많다. 돈을 뿌리는 만큼 상 테크족이나 민간 대행사 등 누군가는 이익을 보지만, 그 많은 예산을 쏟아부을 만한 가치가 있는 정책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차라리 그 예산을 걸식 아동 급식 지원이나 한부모‧조손가정 생계지원 등 정부의 도움이 절실한 곳에 사용한다면 새로운 이전소득이 생긴 만큼 소비가 늘어나 실질적인 소상공인 매출 증대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혈세 낭비 실패작인 제로페이를 포함해 허상을 좇는 인기영합적 상품권 정책은 이제 접을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