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율의 세상 돋보기] 삼인성호(三人成虎)
삼인성호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유래를 찾아 옮겨보면, 전국시대 위나라의 방총이라는 인물이 태자와 함께 조나라에 인질로 끌려가게 되었는데. 가기 전날 밤 방총이 왕을 찾아가 “지금 어떤 사람이 번화가 한복판에 호랑이가 나왔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왕은 믿지 않는다고 했다. 방총은 두 사람이 호랑이 얘기를 하면 믿겠느냐고 다시 물었지만 왕은 여전히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왕은 세 명이 말하면 믿겠느냐는 질문을 받자 믿겠다고 대답했다.
방총은 번화가에 호랑이가 나온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세 명이 하면 이처럼 그럴듯해 보인다고 왕에게 일렀다. 그리고 자신이 조나라에 가면 세 명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험담하게 될 것이지만 신경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왕의 대답은 “알겠다”였다.
그러나 방총이 조나라로 간 다음 날부터 왕에게 방총을 험담하는 사람이 나타났고 훗날 태자는 인질에서 풀려나 위나라로 돌아왔지만 방총은 결국 왕의 의심을 받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이야기는 비단 고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이론에도 있는 모양이다. 이른바 ‘3의 법칙’으로 유명한 스탠퍼드대의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세 명이 모이면 그때부터 집단이라는 개념이 생긴다. 그것이 사회적 규범 또는 법칙이 되고 특정한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왜 세 명이 같은 행동을 하는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최소 세 명이 모이면 하나의 움직임이 되며, 3의 법칙은 상황을 바꾸는 구체적인 힘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중략) 관련한 재미있는 실험을 EBS에서 했는데 대략의 내용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 한복판에서 한 사람이 무언가 있는 것처럼 손짓과 함께 하늘을 바라보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는 같은 행동을 두 사람이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이 두 사람과 나란히 서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고 신기한 듯 바라보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발길을 멈추고 그들과 함께 똑같은 곳을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고사 혹은 실험에서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국정의 한복판 국정감사장과 미디어를 통해 생산되고 확대되는 이야기다.
김의겸 민주당 의원은 10월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미리 개인 일정을 수첩이든 휴대전화든 확인해주시고 질의 받으면 좋겠다”며 “7월19일 밤 술자리에 간 기억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어진 질문에서 김 의원이 주장한 대략의 요지는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과 한 장관이 청담동 술집에서 김앤장 변호사 30명 안팎과 함께 있었으며, 이튿날 새벽녘까지 윤 대통령은 동백아가씨를, 한 장관은 윤도현의 노래를 부르며 국정과 상관없는 얘기를 나누며 가무를 즐겼다는 내용이다.
한 장관은 이에 대해 매우 모욕적이라며 “저는 그 비슷한 자리에도 간 적 없다”며 “저번에 이재정 의원 악수 사건 관련 사안도 (거짓말로) 들통났지만 사과 안 했다. 저번에 뭐 걸자고 하셨는데, 이번에 걸면 어떠냐”며 “제가 저 근방 1km 안에 있었으면 다 걸겠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김의겸이 주장한 내용은 유튜브 매체 더탐사와의 ‘협업’을 통해 발굴한 것으로, 더탐사는 관련한 내용을 연일 유튜브를 통해 내보내며 많은 이로부터 슈퍼챗 등 후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에 호응해 민주당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술자리와 관련해 “갈수록 증거가 추가로 나오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제2의 국정농단에 해당될 만큼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고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애초 증거로 내놓았던 녹취록 속 당사자들은 후속 확인을 위한 접촉을 끊거나 진술을 뒤집기조차 했다. 애초 녹취록 속 대화가 사적 대화로 ‘개인적’인 곤궁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변명 혹은 허언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공적 영역으로 나올 수 없는 대화의 성격이다. 특히 더탐사라는 유튜브 매체는 해당 사건이 일어난 장소도 특정하지 못한 채, 강남 일대를 돌아다니며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곳을 아느냐”고 묻는다. 본인들 머릿속에만 있는 생각을 강남 일대 주민들에게 주입해 한 달 후쯤에는 크나큰 호랑이 한 마리를 만드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강남 일대에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술자리를 밤늦게까지 빈번하게 갖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이다.
유발 하라리는 저서에서 유인원 혹은 네안데르탈인에 반해 호모 사피엔스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고 믿으며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나 인식 가능한 ‘가상의 실재’의 예로 하라리는 민족, 종교, 주식회사 등을 든다.
인간의 숙명일까. 우리 인간은, 보다 구체적으로 2022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은 ‘가상의 실재’를 이용한 거짓말쟁이들과 하루하루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
그들은 오늘도 또 다른 소재를 이용해 작업 중이다.
김경율 회계사·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