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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220228_수상한 지출 지적하자 쉬쉬…돈 문제 흐릿한 ‘진보 호소인들’

2022년 02월 28일

수상한 지출 지적하자 쉬쉬…
돈 문제 흐릿한 ‘진보 호소인들’

 

몇 년 전부터 한 공익법인의 감사를 맡고 있다. 우리 사회의 뼈아픈 사고와 연관된 곳으로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꽤 유력한 조직이다. 그곳에서 1년 가까이 임원진을 비롯한 여러 사람과 지리멸렬한 논쟁을 벌였다. (중략)

 

수상한 지출 지적하자 모두 쉬쉬 

지난해 이맘때 처음 ‘특이사항’을 발견했다. 지출결의서에 첨부된 서류를 보니 차량 렌트 비용이 통상적 시세의 세 배가량이었다. 과다 지출 부분을 환수하고 해당 업무를 결정한 사람에 대한 징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어찌 보면 흔히(?) 있는 일이고, 환수와 징계를 하면 비 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재단의 내부 통제구조가 탄탄해질 기회가 될 성싶었다.

이후 분위기가 묘하게 흘렀다. 이사회의 여러 구성원이 사태를 덮는 방향으로 몰고 갔다. 서류를 바꾸며 ‘쉴드’를 쳤고, 심지어 감독기관인 해당 지자체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어쩔 수 없었다. 비겁하지만 이렇게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작은 희망은 있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겠지. 그런데 아니었다. 이후 비슷한 일이 또 벌어졌다. 마치 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감사를 맡은 나는 다시 지적했다. 그리고 잘못을 덮으려는 서류 재작성과 상황의 불가피성을 강변하는 설명이 되풀이됐다. 최근 내가 겪은 일이다.

 

정의연 사태 때도 덮기 급급 

이쯤에서 생각나는 일이 있다.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 사태다. 핵심 인물인 윤미향 의원(현 무소속, 전 더불어민주당)의 근황도 궁금해 블로그를 찾아가 보았다. 블로그에는 윤미향 의원의 국회 제명 움직임에 반대하는 지지성명이 있었다. “윤미향 의원에 대한 의혹의 대부분이 무혐의로 드러났고”(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교회와사회위원회의 입장 2022. 2. 8.), “친일극우세력들은 윤미향 의원 개인에 대한 공격을 넘어 수요시위조차 공격하며 무력화하려 했고” “위안부 할머님들에 대한 인격 모독과 일제 강점기 역사까지 부정하며 왜곡을 일삼고”(69개 단체 공동성명 2022. 2. 7.) “(윤미향 의원에 대한 제명 시도는) 오직 명예회복만을 바라시다 한 많은 세상을 떠난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다시 욕보이는 일이며, 1500차를 넘긴 수요집회와 그 집회에 참여한 이들을 욕보이는 일”(천주교 수원교구 공동선 실현 사제연대 2022. 2. 11.)이라고 지적한다.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한 분들을 위해 한번 복기해보자. 이 사건의 시작은 2020년 5월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이었다. “수요집회를 없애야 한다.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참가한 학생들이 낸 성금은 어디 쓰는지도 모른다. 다음 주부터 수요집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 집회가 학생들 고생시키고 푼돈만 없애고 교육도 제대로 안 된다. 현금 들어오는 거 알지도 못하지만, 성금·기금 등이 모이면 할머니들에게 써야 하는데 할머니들에게 쓴 적이 없다. ”
이용수 할머니는 기자회견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시민단체에 오래 몸담았고, 수입과 지출에 예민한 회계사로서 나는 사태를 예의주시했다.

당시 가장 황당하고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회계 문제의 실상을 확인하기도 전에 나온 여러 단체와 유력인사들의 잇따른 정의연 지지 성명이었다. 그중에는 우상호·홍익표·고민정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15명의 성명도 있었다.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려고 하는 세력들은 국민과 역사 앞에 사죄해야 합니다. 일본군 성노예제 운동에는 수많은 시민사회단체의 피땀이 어려있습니다. 오랜 믿음에 기반한 피해자와 윤미향 당선인 간의 이간질을 멈추고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해 전심전력해온 단체와 개인의 삶을 더 이상 모독하지 마십시오. 이는 메신저를 공격해 메시지를 훼손하려는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정의를 회복하고 평화를 갈구하는 국민적 염원을 짓밟지 마십시오.” 이용수 할머니가 제기한 것은 자금의 수상한 사용 문제였는데, 갑자기 역사의 진실 문제를 들고 나왔다.

 

시민단체들이 ‘면죄부’에 앞장 

압권은 참여연대·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환경운동연합·한국여성단체연합 등 내로라하는 시민단체가 망라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성명이다. 이들은 “최근의 정의기억연대 회계에 대해 제기된 의혹은 근거가 없고 악의적으로 부풀려져 있다. 누구든 시민의 성금을 모아 목적과 달리 착복하거나 오용했다면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정의기억연대의 경우에는 일부 회계 처리 미숙이 확인되었을 뿐이다. 일부에서 제기한 횡령이나 편취 의혹도 대부분 해명되었고, 용처에 대한 논란도 성노예 문제에 대한 공공외교 단체이자 진상규명 단체인 정의기억연대의 목적에 비추어 볼 때 애초에 본질을 벗어나 있었다”고 주장했다.

성급함만큼이나 사실관계도 문제였다. 결국 이들의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났으니 말이다. 검찰 수사에서 윤 의원은 개인 통장을 이용해 횡령하는 등 불투명한 회계 문제가 사실로 확인됐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근거로 “회계에 대해 제기된 의혹은 근거가 없고 악의적으로 부풀려져 있다”고 단정했을까? 나는 지금도 의문이다.

최근에는 김원웅 전 광복회장의 비리 의혹이 제기됐다. 보훈처 설명에 따르면 광복회가 국회 카페의 중간거래처를 활용해 허위 발주 또는 원가 과다 계상 등의 방법으로 6100만원을 마련했고, 국회 카페 현금 매출을 임의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후 김 전 회장의 한복·양복 구입비, 이발비 등 사적 용도, 김 회장이 설립한 협동조합인 ‘허준 약초학교’ 공사비와 장식품 구입 등에 사용했다. 김 전 회장은 이 정부 다른 인사들이 그러했듯이 명백한 명예훼손이라며 의혹을 부인하다가 결국 자진 사퇴를 하면서도 “사람을 볼 줄 몰라 생긴 불상사”라며 횡령 의혹은 부인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노무현 재단은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평(3.3㎡)당 2000만원이라는 전대미문의 비싼 건축비로 노무현시민센터를 건설 중이다. 재단의 전 이사장인 유시민씨에 따르면 지난해 7월께 이미 공사가 끝나야 했으나 여태껏 완공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여러 언론을 통해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왜 스스로를 개혁 진보세력이라 일컫는 이들은 금전 문제만 나오면 곪은 부위를 도려내고 감염 원인을 찾아낼 생각을 하지 않을까. 진영 안팎의 금전적 비리 의혹은 일단 감싸는 일이 반복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패거리 이익과 자리 지키기가 우선이라는 고백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해도 되나.

이번엔 그냥 넘기지 않기로 했다. 서두에 말한 공익법인에 ‘감사인의 감사의견 거절’을 선언했다. 곧 있을 총회에서 무슨 발언들이 오갈지 지켜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