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대통령 투표 준비하기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세계가 ‘트럼프 2.0’을 예측하느라 바쁜 가운데, 트럼프 당선자는 “복수에 관심이 없으며, 좋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최고의 복수”라고 말했다.
진심으로 들린다. 미국 대통령씩이나 됐는데, 그것도 두 번째이고 마지막인데, 정말 잘해보고 싶지 않겠나? 바로 다음날, 윤석열 대통령도 그간의 불찰을 사과한다며 잘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역시, 나라도 그런 심정일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십수년 간, 대통령은 자기를 안찍은 사람은 물론, 찍은 사람한테도 욕을 먹으면서 끝나고 말았다. 도대체 왜?
나도 좋고 국가도 좋은 일은 누구나 할 것이고, 양쪽에 모두 나쁜 일은 누구나 피할 것이다. 좋은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나머지 영역에서 발생하게 된다. ‘전체’와 ‘자기’의 입장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할까? 장기적으로 필요하지만 당장 실적에 나쁜 일, 전체로는 이익이지만 지지세력이 반대하는 일, 금전적 이해관계, 인간적 의리, 기분과 체면 문제까지, 우리는 대통령이 자기 입장만 앞세우는 경우들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자기’는 대통령 한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 주변에는 그 자리에 있기 위해서 나름 투자를 한 많은 ‘자기’들이 있고, 그들이 선택의 기로에서 개인 입장을 우선하기 시작하면 좋은 대통령이 되기란 몹시 어려울 것이다. 어떤 직업의 사회적 역할과 그 일을 수행하는 자연인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단순하거나 기술적인 일보다 전체를 고려해야 하는 업무일수록 괴리가 생기기 쉬울 것이다.
올해 국민연금 개혁안을 논의한다고 정부는 시민 500명으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서 ‘1안: 더 내고 더 받기’, ‘2안: 더 내고 그대로 받기’를 표결하게 했다. 어떤 자료를 주고 무슨 교육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현 상태로는 몇십년 내에 재정이 고갈된다는 계산은 이미 나온 상태였기에 ‘더 내고 덜 받기’ 옵션이 없었다는 점도 의문이지만, 그나마 두가지 중에서도 다수의 표를 받은 것은 미래세대에 더 큰 적자를 넘기는 1안이었다. 이렇게 우리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선택을 한다.
그러니, 좋은 대통령도 사람들이 ‘좋은 사람 뽑으면 알아서 잘 할 것’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 정책을 면밀히 감시해야 겨우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나쁜 정책을 식별한 뒤, 그 앞잡이 노릇을 한 사람들을 정치권과 대선캠프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말이 쉽지, 어려운 일이다. 그런 내용을 정리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하고, 거기에 관심을 가지되 그 정보조차 걸러서 판단하려는 다수의 노력도 있어야 한다. 기획된 공론화가 아니라, 진짜 공론화를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와 ‘투자자’ 지위를 향유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소비와 투자는 노력을 덜하고, 원클릭일 수록 좋다. 이와 달리 ‘유권자’라는 지위는 자영업자 마인드로 신경써야 하는 것임을 놓치고 있다. 선거 때만 나오는데다가 그 경험도 불쾌한 쪽이니, 점점 무관심해진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정책을 정하는 일도, 그 직무를 맡은 사람들을 감시하는 일도 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하자.
정치인들은 별로 당선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데도 하겠다고 나선다. 유권자들은 그런 자세가 없어서 당하고 사는지 모른다. 한 명이라도 부적격자들을 떨구어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면 되지 않을까? 그 준비를 지금 시작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벌써 시작했으니까.
예자선 변호사ㆍ경제민주주의21 금융사기감시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