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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웍스]250728_은행 이자놀이 대책반장 나선 금융위…감독체계 개편 물 건너가나

2025년 07월 31일

은행 이자놀이 대책반장 나선 금융위…감독체계 개편 물 건너가나 

 

조혜경 경제민주주의 21 대표 

KB금융지주가 올해 2분기에만 1조7000억원이 넘는 역대 최대 당기순이익을 거뒀다는 보도가 나오자마자 이재명 대통령이 “국내 금융기관들이 손쉬운 주택담보대출 같은 이자놀이, 이자 수익에 매달릴 게 아니라, 투자 확대에도 신경 써 달라”라며 국내 은행의 땅 짚고 헤엄치기식 이자 장사에 일침을 가했다.

대통령의 경고성 발언 한마디에 금융위가 총알같이 움직였다. 5대 금융권 협회장을 불러 예정에도 없던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금융위 해체설로 인한 위기감 때문인지 군기가 바짝 들어 대통령에 절대 충성의 자세로 확실한 존재감을 부각하려는 듯하다. 금융회사의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금융위가 정치적 목적에 은행권을 동원하는 익숙한 구태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은행권을 향한 이재명 대통령의 쓴소리는 모두가 예상했던 일이다. 은행 경영진의 속내는 복잡할 것이다. 실적에 따라 늘어나는 성과급을 생각하면 쾌재를 부를 일이지만, 실적을 발표할 때마다 대통령부터 국회, 동네 골목시장 소상공인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 욕받이가 되어 도마 위에 오를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수익을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쏟아지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은행 고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상생금융’ 홍보에 매달리는 형국이다. 그러나 보여주기식 상생금융 패키지로 이자 장사 비난을 잠재우는 건 역부족이다. 작년부터는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발맞춰 주주환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칭찬은커녕 외국인 배불리기, 국부 유출 논란이 따라붙으니 이마저도 먹히지 않는다.

이자 장사는 상업은행의 본업이다. 불특정 다수로부터 예금 등을 받아 조달한 자금을 대출하는 것이 은행의 주 업무라는 점에서, 은행의 수익이 이자 이익에 편중돼 있는 것을 비정상이라 비난해서는 안 된다.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진짜 문제는 이자 장사가 부동산 시장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가계대출 급증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주담대가 부동산 쏠림 현상의 전부가 아니다. 은행 통계에서 기업대출로 분류하는 개인사업자의 임대업 대출, 중소기업 시설자금 대출도 모두 부동산담보대출이다.

전당포와 다를 바 없다는 조롱을 받을 만하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도 은행의 전당포식 경영 행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각종 서민금융상품, 전세자금 및 중소기업 대출 보증, 이자 지원 등 해를 거듭할수록 정책금융 종류도 많아지고 공급량도 늘어나고 있다. 역설적으로 정책금융의 최대 수혜자는 대형 시중은행이다. 정책금융 규모를 늘리면 늘릴수록 은행의 무위험 이자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 때문이다. 지원 대상을 모집하고 선별해 심사하는 일은 공공기관이 도맡아 하고, 부실이 발생하면 해당 공공기관이 대신 갚아주기 때문에 은행은 위험부담 없이 자금만 건네주고 이자 수익을 독차지한다.

지난 20여 년간 국내 은행산업은 부동산 불패 신화에 편승해 편안한 이자 장사로 엄청난 수익을 챙겨왔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도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굳이 그 길을 가지 않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공화국의 거침없는 진격은 이제 막다른 골목에 부딪혔다. 국내 은행산업은 유효기간이 지난 과거의 성공 공식을 뒤로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국내 은행산업이 당면한 시대적 요구는 대전환 시대의 불확실성을 헤쳐 나가며 기업의 성장과 혁신을 촉진하는 ‘생산적 금융’ 본연의 역할을 회복하는 것이다. 부동산 공화국과 공생 관계를 정리하고, 역동성을 상실하고 저성장의 늪에 갇힌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견인하는 모험자본과 인내자본의 공급자로 나서야 한다. 물론 부동산담보대출에 익숙한 은행이 뛰어들기 쉽지 않은 일이라 은행권의 변화는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은행권의 변화는 정부와 정치권의 변화 없이는 기대하기 어렵다. 부동산 불패 신화를 일궈낸 주역이 정부와 정치권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먼저 부동산 공화국과 결별을 선언하고, 은행이 생산적 자금의 공급자로서 역할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정책금융을 새롭게 구상하고 설계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주력하고 있는 주식을 부동산에 버금가는 투자수단으로 만드는 밸류업 정책이 그 숙제를 대신할 수 없다. K-AI 육성을 위한 100조원 국민펀드 조성과 같은 산업정책은 정부 재정과 정책금융기관을 동원하는 것이 우선이다. 혁신금융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정책금융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고, 정책금융이 제 역할을 하려면 정부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것이 정공법이다. 관성대로 정부 돈 안 쓰고 민간 금융회사의 등을 떠미는 편법과 관치로 밀고 나가서는 안 된다.

관치의 문고리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금융위가 대책반장 완장을 차고 앞장서서 달리는 모습에, 이재명 정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접어야 하나 싶다. 솔직히 정권 입장에서 관치금융은 엄청난 유혹이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관치에 짓눌려 후진국 굴레에 빠져 있든 말든, 정권 입맛대로 민간 금융권을 길들이는 관치금융을 유지하고 싶은 게 권력의 속성이다. 권력의 무한 욕심에 제동을 거는 능력이 곧 그 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출처 : 뉴스웍스(https://www.newswork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