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 공개정보

[경향신문]무엇이 포퓰리즘 정책인가?(전성인칼럼)

2020년 09월 8일

[전성인 칼럼]무엇이 포퓰리즘 정책인가?

 

지난 칼럼 이후로 대략 네 가지 정도 큰 사건이 있었다.

첫째, 론스타 문건이 대량으로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워싱턴에서 진행된 투자자-국가 중재(ISDS) 사건에서 론스타와 우리 정부 간에 오고간 서면의 원문이 처음으로 공개되었고, 싱가포르에서 론스타와 하나금융지주 간에 있었던 국제상사중재(ICC) 결정문도 공개되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이들 서류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점은 론스타의 교활함과 우리 정부의 비겁함이다. 우선 론스타는 자신들이 어떠한 경우에도(심지어 외환은행이 부실은행이었다고 하더라도)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없었던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라는 점을 끝까지 숨기면서, “한국 정부는 한번도 우리를 비금융주력자라고 인정한 적이 없다”는 표현 뒤에 숨어서 간계를 꾸미고 있었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면서 “우리가 론스타 너희를 얼마나 잘 대해줬는데 이럴 수 있냐?”는 식의 감정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론스타가 2003년 9월 현재 비금융주력자인지 다시 조사해 만일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에 해당하면 론스타의 당초 외환은행 인수 자체를 취소해야 한다. 그리고 국회는 시급히 론스타 청문회를 개최해 국민들이 감춰진 진실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하여, 멍하니 있다가 어느 날 지갑을 털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둘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드디어 기소되었다. 사필귀정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시간이 경과하다 보니 마치 기소가 무슨 큰일이라도 되는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생겼다. 검찰의 공소장만 130쪽, 수사기록만 21만쪽에 달하고 심지어 수사결과를 빼곡하게 요약한 보도자료가 22쪽이었다. 이 보도자료를 보면 그동안 삼성이 숨겨온 여러 가지 더러운 사실들이 적나라하게 요약되어 있다. 심지어 유명인사의 칼럼을 대필하여 게재했다는 사실까지 있다.

언론 왜곡 사례가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이러니 이 부회장의 불법 승계 사건에서 국민은 귀머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회는 지금이라도 검찰에 공소장을 요구해 국민들이 이 대형 범죄의 전말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법무부나 법원도 피고인이 우리나라 최고의 변호인단을 구성할 정도로 방어권 행사에 문제가 없고, 이 사건이 가지는 사회적 파급효과가 지대한 만큼 검찰의 수사결과가 공개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제 최근 있었던 네 가지 사건 중 나머지 두 개만 남았다. 이 두 사건은 ‘무엇이 포퓰리즘 정책인가?’라는 질문과 매우 깊숙하게 맞닿아 있다.

우선 한국판 뉴딜펀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3일 청와대에서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20조원의 국민참여형 뉴딜펀드 설치 등 뉴딜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목적은 경제위기 극복과 성장 잠재력 배양이다. 그럴 수 있다.

문제는 각론이다. 국민참여형 뉴딜펀드는 처음에 원금보장에 수익률 3%를 약속하는 펀드로 포장되었다. 무리수 없이 이런 펀드가 존재할 수 없고(존재 가능했다면 자본시장이 이미 출시했을 것이다), 설사 무리수를 동원해 이런 펀드를 판매하더라도 원금보장 상품을 파는 것은 자본시장법 위반이다. 무리수가 부족해 약속이 깨진다면 그것은 불완전 판매다. 거의 모든 경우의 수가 지뢰밭인 정책인 것이다. 그런데 3일 오후 부총리와 금융위원장은 버젓이 언론 앞에서 “사실상 원금보장 상품”이고 “국고채 이자보다는 높은 수준일 것”이라면서 상품을 홍보했다.

펀드의 실상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왜 이 펀드가 “사실상 원금보장”이 되는가? 상품 자체가 안전해서 그런가? 아니다. 누군가가 그 손실을 먼저 떠안기 때문이다. 그가 누군가? 국민이다. 국민이 혈세로 막는다는 것이다. 즉 부총리와 금융위원장의 말을 다시 쓰면 ‘국민 여러분, 이 상품 안전해요. 왜냐고요? 국민 여러분이 세금으로 다 막아주니까요’ 이런 것이 된다.

사업 대상이 어떻게 선정될지도 모르고 이에 대한 감시체제도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국토교통부는 지난 6월17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철도 분야 민간 제안 사업의 경우 예비타당성조사, 기본계획 등을 거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만일 이런 사업에 국민 혈세가 손실분담용으로 투입된다면 어찌될 것인가? 이런 정책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국민들은 잘못하면 골병 드는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다.

마지막으로 제2차 재난지원금 지급 문제를 보자. 정부는 선별지급 방침을 굳혔다. 마치 보편지급을 주장하는 것이 무책임한 포퓰리즘인 것처럼 폄하하면서. 그러면서 재원은 국채 발행으로 조달하기로 했다. 국채는 나중에 세금 걷어야 한다. 결국 정부는 ‘선별지급’과 ‘미래 징세’를 선택한 것이다. 왜? 지금 세금 걷으면 정치적으로 불리할까봐. 이게 포퓰리즘이다.

나는 계속 ‘보편지급’에 ‘선별징세’를 외쳐왔다. 국민 전부에게 지급하고 그 재원은 지금 부자에게 돈 걷으라는 것이다. 보편지급을 해야 하는 이유는 코로나19 사태의 피해 규모를 선별하는 작업을 신속하고 정교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고, 선별징세가 가능한 이유는 세율, 누진구조, 면세 등의 측면에서 나름대로 오랫동안 구축한 우리 사회의 합의가 징세구조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장 세금을 걷어야 하는 이유는 미래 세대에게 그 부담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서다. 부자에게 걷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장 고통을 감내할 능력이 크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은 정직하게 해야 한다. 헛된 약속으로 국민을 기망해서는 안 되고, 이를 꽉 깨물어 총알을 물어야 할 때는 그렇게 해야 한다. 지금 정부는 총알을 물지 않고 꽹과리만 치고 있다.

출처 및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9080300065&code=990100#csidxa40faf3e674f499be62f6157296baf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