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과 이별해야 할 사람
[전성인의 경제노트]-경향신문 오피니언(190926)
글을 쓰는 일은 이별하는 것이다. 적어도 그럴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깝게 알고 지내던 선배, 동료, 후배들이 합법과 불법, 정의와 불의의 경계를 걷는 것을 보면서도 그 주제를 다루지 않으면 안되는 불행한 일들이 종종 생기기 때문이다. 삼성을 말하고 금융개혁을 말하고, 법안을 찬성하거나 반대할 때 이 사람들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 대형 경제스캔들에 연루된 지인을 두고 아픈 말을 적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로 알면서도 모르는 척한다. 그들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도 그들이 내 글을 읽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일은 이별하는 것이다.
오늘 또 한 사람과 이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는 조국 법무부 장관이다.
조 장관은 정의와 공정을 대표하는 법무부 장관직을 수행하기에는 너무 많은 흠결과 이해상충에 직면해 있다. 국회와 국민을 상대로 한 많은 발언들이 실체적 진실과 너무 괴리돼 있다. 검찰개혁 필요성에 백번 공감하지만, 조 장관의 흠결 정도는 이를 눈감고 넘어가기엔 너무 크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쓴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조 장관은 법무부 장관직을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마도 조 장관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펄쩍 뛸 것이다. 조 장관 주변의 사람들이 불법을 저질렀을 수는 있으나 정작 조 장관은 불법을 저지른 게 없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공직 수행 가능 여부를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형식적 기준은 공직자윤리법이다. 그런데 조 장관은 이제까지 드러난 사실관계로 볼 때 공직자윤리법을 어겼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요새 다수의 언론이 관심을 가지는 “간접투자 유무”나 “주식백지신탁 거부”의 측면이 아니다. 이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공직자 재산등록과 관련된 것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조 장관의 배우자가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했는가 하는 점이다. 공직자윤리법 제4조에 따르면 배우자의 재산은 필수적으로 등록해야 하며, 이때 재산의 기준은 “소유 명의와 관계없이 사실상 소유하는 재산”을 말한다. 따라서 만일 배우자가 주식을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었다면 등록의무자는 이를 반드시 등록하여야 한다. 이때 등록의무자는 배우자가 아니라 공직자인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고 따라서 허위나 부실한 등록의 최종 책임자도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다.
그럼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관계는 어떠한가?
조 장관 배우자는 조 장관의 처남에게 3억원을 빌려주었고, 처남은 대출받은 돈을 합하여 총 5억원을 투입하여 2017년 3월 코링크PE 주식 250주를 매입했다. 만일 이 주식이 온전히 처남의 소유라면 문제가 없겠으나, 만일 조 장관의 배우자가 그 전부 또는 일부를 차명으로 보유한 것이라면 재산등록 대상이다. 그러나 2017년 8월25일과 2018년 3월29일의 관보에 실린 조 장관의 재산공개 내역에는 이 주식이 등재되어 있지 않다. 사실관계에 따라 조 장관에게 중대한 허물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재산등록에서 누락된 주식의 의혹은 또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 장관의 처남 자택에서 상장회사인 WFM이 발행한 주식 12만주(약 6억원)가 실물 증권의 형태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시내역이나 언론보도를 종합할 경우 조 장관의 배우자나 처남이 WFM 주식을 매입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렇다면 무슨 연유로 조 장관 처남이 6억원 상당의 주식을, 그것도 실물로 보관하고 있었을까? 이 주식의 형식상 명의자는 누구일까? 무엇보다도 이 주식의 실제 소유주는 누구일까?
12만주 규모의 주식 거래를 추적할 경우, 2018년 1월22일 유니퀀텀홀딩스라는 회사로부터 코링크PE가 12만주를 매입한 공시자료가 있으나, 정확히 이 규모를 매각한 공시는 찾을 수 없다. 다만 2018년 4월5일 코링크PE는 123만주를 매각하는데 이때 매수인 중 한 명이 5촌 조카 조모씨의 배우자인 이모씨였다. 이씨는 코링크PE 설립 무렵에 조 장관의 배우자로부터 5억원을 빌리는 등 자금거래가 있던 인물이다. 따라서 이날 매각된 주식 123만주 중 이씨에게 12만주가 돌아갔고, 이 주식을 조 장관의 처남이 실물 형태로 보관하고 있다는 가설을 상정할 수 있다. 이 가설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 주식은 조 장관 배우자의 차명 주식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 의혹 중 적어도 하나가 사실이라면 조 장관은 민정수석 당시 재산등록에서 주식을 누락하고 신고한 것이 된다. 재산등록은 다른 누구의 의무도 아닌 조 장관 자신의 의무다. 바로 여기서 공직자로서의 조 장관의 흠결 또는 위법 가능성이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의혹은 명명백백하게 규명해야 한다. 문제는 방법이다. 조 장관을 포함한 여권은 검찰수사가 과도하고 편파적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심지어 혹자는 검찰이 증거를 조작할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검찰수사를 비난하며 손을 놓고 있기에는 위 의혹의 무게가 결코 작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직권으로 재심사를 하면 된다. 공직자윤리법 제9조의2는 “증거자료가 위조·변조 또는 고의로 누락된 사실”이 있거나 또는 “중요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경우” 직권으로 재심사할 수 있다. 시효가 3년이므로 이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 무엇보다 여권이 수사의 진실성을 비난하는 검찰수사의 방식이 아니므로, 조 장관이나 여권이 거부할 명분도 없다.
여기서 문제가 나오면 공직자윤리법 제22조에 따라 공직자윤리위원회는 해임 또는 징계의결을 요구하고, 비위 사실은 검찰이나 국세청에 넘기면 된다. 물론 문제가 없다면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책임지고 이를 공식화하면 된다.
그러나 나는 조 장관이 사태를 이 길로 몰고 가는 것에 반대한다. 이 길이 국가가 택해야 할 마땅한 해법이지만, 조 장관을 그래도 몇 번 지근거리에서 만났던 사람으로서 고언을 하자면, 이제는 사퇴하는 것이 맞다. 조 장관을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무엇보다 조 장관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검찰개혁을 위해서도 그렇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이별하고 있다. 그게 업이다.
[출처 및 기사 원문]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9262100025&code=990100#csidx5be057492a4ca75af7d29958e92f9d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