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경제 3법, 무엇이 빠졌나?
전성인(홍익대 경제학부)
문재인 정부가 모처럼 경제개혁의 목소리를 냈다. 공정경제 3법(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뭐라도 하는 것처럼 생색을 내고, 재계는 당장이라도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이다. 그러나 야당 비대위원장인 김종인 박사가 찬성하듯이 이것은 진작에 통과시켰어야 할 법이다. 그걸 가지고 새삼 호들갑을 떠는 정치권과 재계의 모습이 흡사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하기야, 코미디로 말할 것 같으면 어디 입법 과정만 코미디겠나? 대검찰청 국감이야말로 실소를 터뜨리는 데는 아주 제격이니 말이다.
각설하고, 필자가 공정경제 3법에 자못 냉소적인 이유는 그것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이 법들은 당연하고 마땅한 것이다. 필자가 냉소적인 진짜 이유는 이들 법안에 진짜 “이빨”들은 다 빠져 있기 때문이다. 외래어를 조금 섞어 쓰자면 “앙꼬가 거의 다 빠져나간 찐빵”이다. 그럼 진짜 들어갔어야 할 “송곳니”들은 어떤 것들인가? 그걸 조금 돌이켜 보자.
상법 개정안에서 노동이사제 빼 먹어
첫째, 상법 개정안이다. 여기서 빠진 송곳니는 “노동이사제”다. 필자가 기억하는 한,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노동이사제를 명문화한 대표적인 상법 개정안은 2016.7.4.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법개정안이다. 이 개정안은 상법 제542조의8(사외이사의 선임) 제4항부터 제6항을 개정 또는 신설하여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시 우리사주조합 추천 인사를 1인 포함하도록 하고(제4항), 소액주주와 우리사주조합 추천 인사 각 1인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도록 하고(제5항),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를 선출할 때 소액주주와 우리사주조합이 추천한 후보 중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1인을 반드시 선임하도록 하였다(제6항).
이 법안의 발의자는 김 전 의원을 포함하여 총 122명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마 거의 다 서명한 듯하다. 지금 기준으로 볼 때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시 전남도지사였으니 서명을 못했지만, 김태년 현 원내 대표, 한정애 현 정책위원장도 모두 서명했다. 그 외 박영선, 김현미 장관들도 당시 의원 신분으로 서명했다. 며칠 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의원의 이름도 보인다. 국민의당도 서명했다. 박지원, 정동영, 천정배 의원 등. 정의당도 서명했다. 고 노회찬 의원, 심상정 의원 등. 심지어 새누리당 의원도 딱 한 명 서명했다. 김세연 의원! 그 외 많은 다른 의원들 지지를 받아 총 122명이 서명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이번 상법개정안에는 이 노동이사제가 빠져 있다. 이것은 정책 기조의 왜곡이자 공약 위반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100대 국정과제에서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선를 위해 2018년부터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0년인 현재 상법 개정안에 이를 포함시키지도 못하고 공공기관에도 시행을 강제하지 않고 있다. 잘못된 일이다. 다만 박주민 의원이 2020.8. 공공기관(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에 노동자가 추천한 사외이사를 회사 규모에 따라 1인 또는 2인 의무적으로 선임하도록 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또한 2020.10. 김종인 상법개정안을 재발의하여 노동이사제에 대한 관심을 유지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 빠진 계열금융기관의 의결권 제한
정부가 제안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전부개정안이다. 공정위는 지난 2018년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 TF를 설치하고 공정거래법의 거의 모든 조항의 적절성과 수정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일부 기업에 유리한 부분은 지난 4월말에 통과시키고 이번에 경제민주화와 연관된 진짜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이번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은 상당히 진일보한 경제민주화 조치를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인의 금지청구권을 도입(안 제107조)하고,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기업에 자료제출 의무를 부과(안 제110조)하고, 계열관계의 공익법인이 계열회사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부분적으로 제한(안 제24조 제2항 및 부칙 제8조) 등이 그것이다. 특히 영미에서의 공정거래법이 대표적인 형평법(law of equity)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형평법상의 구제수단(equitable remedy)인 금지청구권(injunction)을 도입하기로 한 것은 단순히 조문 하나를 추가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비록 불공정 거래 행위로 한정했으나 앞으로 이 제도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역시 “송곳니”는 이곳 저곳에서 빠져 있기는 매한가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계열금융기관의 비금융계열회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 제한(현행법 제11조 제3호, 개정안 제24조 제1항 제3호) 부분이다. 공정위는 임원의 선임과 해임, 정관 변경, 영업 양도 등의 안건에서 계열금융기관의 비금융계열회사에 대한 의결권을 특수관계인 지분과 합하여 15%를 초과할 수 없다는 현행 조항을 그대로 유지했다.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합병이나 영업 양도의 상대방이 계열회사인 경우에는 이 특혜를 삭제한 점이다.
여기서 관건은 15%라는 한도의 적정성이다. 재벌 총수가 보험계약자와 같은 금융회사 고객의 돈으로 지배권을 유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고객의 돈에 근거하여 금융회사가 총수를 위해 행사하는 의결권은 당연히 금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현행 공정거래법의 취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공정거래법은 “경영권 유지”라는 명목으로 금융회사의 의결권을 인정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말이 좋아 경영권 유지이지 이 말을 까 보면 결국 재벌 총수의 지배력을 인정시켜주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말이 안되는 변명이다. 그리고 이 조항에 기대는 재벌은 실질적으로 삼성밖에 없다. 결국 삼성 이건희 회장이나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이 뺏길 수 있으니 규정을 강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어 논리가 얼마나 허접했으면 심지어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도 이를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박 후보는 대선 공약에서 15%를 5%로 낮추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깜짝 놀란 삼성이 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최근 들어 유명해진 소위 “G 문건”을 통해 그 영향력을 분석했을 정도였다. (G 문건은 그 본질이 이재용으로의 승계를 위한 청사진이다. 이번에 기소된 이재용 사건에서 변호인은 이 문건이 단순히 박 대통령 당선 후 강화될 경제민주화 조치에 대한 대응 문건이라고 그 위상을 평가절하하고 있으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G 문건은 승계 문건이다. 다만 승계를 검토하면서 변화된 규제환경을 함께 검토하면서 승계 해법을 모색했을 뿐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당선된 후 여러 차례 이 공약의 내용을 바꾸더니 결국은 흐지부지 시켜 버렸다. 이제 문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만큼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이걸 모른 척 어둠 속으로 던져 버린 것이다. 잘못한 것이다.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에서 빠진 금융안정협의회와 계열분리명령제
금융그룹감독법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관심을 기울인 법률로 알려져 있다. 김 실장은 과거 종종 경제민주화 조치들을 냉소적으로 대하면서 “그런 조치들로 실제 경제민주화나 재벌개혁이 달성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말을 하곤 했다.(이 말에 대한 가장 생생한 반론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후 삼성이 부랴부랴 그 대응으로 만든 G 문건이다. 경제민주화 조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내세웠던 것이 금산 복합그룹에 대한 통합감독 제도였다.
경제민주화 조치에 대한 김 실장의 냉소적인 판단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금융그룹에 대한 통합감독은 중요하다. 미국은 서브프라임 사태가 금융시장의 체제적 위기로까지 발전하자 도드-프랭크 법(Dodd-Frank Act)을 제정해서 이에 대한 대응에 나섰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정부가 제정하려고 하는 금융그룹감독법은 “한국판 도드-프랭크 법”이 되었어야 한다. 그렇게 되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올씨다”다. 그 이유는 “앙꼬가 다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거의 다 빠진 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 다 빠졌다. 왜 그런가?
이 법의 보호법익은 금융시스템의 안정성(stability) 유지다. 다른 말로 말하면 체제적 위험(systemic risk)를 통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시스템의 위험은 단순히 금융위원회의 능력 만으로는 통제하기 어렵다. 정보의 공유도 불충분하고 동원할 수 있는 정책 수단도 한정적이다. 즉 금융감독 유관기구 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미국은 금융안정협의회(Financial Stability Oversight Council; FSOC)을 만들고 여기에 체제적 안정성 유지의 책무를 부과하였다. 우리나라도 금융감독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미국의 FSOC과 유사한 금융안정협의회(또는 금융안정위원회)를 만들자는 제안을 오래 전부터 했다. 그런데 이 법에는 그런 기구가 없다. 잘못된 일이다.
그 다음으로는 정책수단이다. 만일 감독을 열심히 했지만 금산복합그룹의 위험을 통제하지 못해 체제적 위험이 야기되면 어찌할 것인가? 금산복합그룹을 쪼개야 한다. 즉 구조적 교정수단(structural remedy)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금융기관 계열분리 명령제다. 계열분리 명령제란 금융안정의 책무를 부담하는 감독기구, 이를테면 금융안정협의회가 문제를 일으킨 금산복합그룹에 대해 금융기관을 분리하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실무적으로는 금융안정협의회는 그런 결정을 하고 명령 자체는 금융감독기구가 내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제안된 금융그룹감독법에는 여러 가지 시정조치가 그럴 듯하게 나열되어 있지만(제24조 및 제25조), 정작 송곳니에 해당하는 금융기관 계열분리 명령제는 찾아볼 수 없다. 이것도 잘못된 것이다.
2012년 하반기 무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던 안철수 후보는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재벌개혁위원회를 내세웠다. 사실 이 공약은 일곱 글자에 불과한 슬로건에 불과할 뿐 알맹이는 별 것이 없었다. 여기에 알맹이를 넣은 것이 계열분리 청구제/명령제였다. 그 후 계열분리 청구제/명령제는 안철수 진심캠프의 재벌 관련 대표 공약이 되었다. 그 때 안철수 후보의 정책 분야 공약을 총괄한 사람이 김상조 현 정책실장의 전임자였던 장하성 교수였다.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는 아무런 공약이 없었다.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아마도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에 관심을 많이 기울인 것으로 알려진 김 실장은 그렇지 않다. 무엇이 필요한 지 다 알 것이다. 그런데도 앙꼬가 빠진 찐빵을 내놓고 말았다. 잘못된 일이다.
마지막 남은 걱정
송곳니도 빠지고 앙꼬도 없는 공정거래 3법을 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2012년의 대선과 2016년의 총선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친다. 화려한 거짓말의 향연 속에 스러져 간 개혁에의 열망들도 떠올랐다. 그러나 과거의 씁쓸한 경험은 이런 추억에만 머물지 않는다. 송곳니도 빠지고 앙꼬도 없는 공정거래 3법이 앞으로 더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예측”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 정부는 공정거래 3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불가피했다면서 재벌들이 원하는 법률을 적당히 끼워 팔기 할지도 모른다. 늘상 그래 왔던 주고받기식 입법이 이번에 등장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요즘 시끄럽게 목청을 높이고 있는 규제 완화 입법들, 예를 들어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허용이나 차등의결권 도입 등이 혹시 그런 바터용 후보들이 아닐까? 두고 볼 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