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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_범민주 비례용 ‘선거연합정당’ 제안에 대한 비판(김찬휘)

2020년 03월 2일

범민주 비례용 ‘선거연합정당’ 제안에 대한 비판

김찬휘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녹색당 정책위원)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이자 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지난 2월 27일 녹색당 게시판에 선거연합정당 창립을 제안하는 글(이하 하승수 제안)을 올렸습니다.(https://bit.ly/3cnAGOL) 그 이후 녹색당 내부에서는 하승수 제안에 관한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고 총선을 코앞에 두고 가장 뜨거운 정치적 논쟁거리의 하나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녹색당 내부의 비판적 의견이 주로 하승수 제안의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었다면 저는 이 글에서 비례용 ‘선거연합정당’ 주장의 내용적 측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먼저 하승수 제안의 주요 논지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열매를 미래한국당이 가져갈 상황이다.
  2. 미래한국당이 준연동형 비례의석 배분 한도 30석 중 21석을 가져갈 수도 있다.
  3. ‘연합정당’을 만들어 예상되는 미래한국당의 독식을 저지해야한다.
  4. ‘연합정당’은 민주당의 ‘위장정당’이 아니다.
  5. 위장정당은 “선거 시기에 정당을 급조하고, 선거 이후에 본체인 정당에 단순 흡수되는”것이고 “전 세계에 예가 없는 방식”이다. 반면 선거연합정당은 “기존에 활동하던 정당들이 선거 시기에 연합하는”것으로 “숱한 사례가 있다.”
  6. 선거연합정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훼손하는 미래한국당의 꼼수에 대한 대응이다.
  7. 선거연합정당을 만들지 않으면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이 제1당이 될 수도 있다.
  8. 선거연합정당을 만들면 여러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도 이룰 수 있다.
  9. 하승수 자신은 선거연합정당 제안자의 한 명이고 2-3주간 개인의 자격으로 참여하되, 선거연합정당 참여의 결정은 녹색당 당원의 의견을 수렴하여(예를 들어 전 당원 투표) 결정하겠다.
  10. 하승수 자신은 총선에 불출마한다.

이상의 주장에 대해 저는 다음과 같이 반박합니다.

  1. ‘자한당 세력’(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을 합쳐 이렇게 부르겠습니다)이 준연동형 21석을 얻어 원내 1당이 된다는 주장은 과장되었다.
  2. 민주당 비례 위성정당 구상은 민주당의 지역구 패배를 전제로 한 ‘보험’이다.
  3. ‘자한당 세력 원내 1당’ 저지를 원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은 정당 투표에서 소수정당들에게 전략 투표를 해야 한다.
  4. 녹색당 등 진보정당은 자한당 세력 1당 저지를 당의 ‘기본’ 노선으로 삼으면 안된다.
  5. ‘선거연합정당’과 ‘정당연합’은 다르다. 정당연합 사례로 선거연합정당을 옹호하면 안 된다.
  6. 민주당 세력과 연합하는 ‘선거연합정당’은 민주당의 ‘위성정당’일 뿐이며 민주당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
  7. 민주당의 위성정당이 아니라 소수정당들의 연합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8. 민주당의 위성정당은 진보세력의 표를 빼앗아 가는 것이다.​

주제1: 자한당 세력의 제1당 주장에 관하여

​공직선거법 개정의 열매를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이 통째로 가져가 원내 1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선거연합정당을 만들어야한다는 주장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하승수 제안은 “준연동형 30석 중 21석을 미래한국당이 가져가는 시나리오가 현실로 되고” 있다고 하면서 그 근거 자료로 지역구 당선자수는 2016년 총선을 기준으로, 정당득표율은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표 1 참조) 그런데 그의 예측표에 따르면 민주당이 원내 제1당일 뿐만 아니라 정의당 표만 합쳐도 국회 의석수 과반을 넘습니다. 설사 미래통합당의 비례정당인 미래한국당이 준연동형 비례의석을 21석이나 가져간다고 해도, 그 둘을 합쳐 그들은 제1당이 되지 못합니다.

표 1: 비례대표 의석 배분 예측 ((https://bit.ly/3cnAGOL 참조)

(주석: 정당득표율과 비례의석은 2월 3주차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지역구 의석은 2016년 선거결과를 반영한 수치)

그렇다면 미래한국당이 연동형 비례 21석을 가져간다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제안의 예측은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2016년과 같이 ‘선전’하여 준연동형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 전혀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민주당이 정당득표율 40%를 얻는다고 가정하고 지역구에서 총 의석 300석의 40%인 120석 이상이 당선된다면, 민주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 의석(총30석) 중 한 석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거꾸로 이러한 ‘장밋빛’ 예상이 빗나가 민주당의 지역구 의석이 120석 미만이 되면 민주당이 준연동형 의석배분에 참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미래한국당이 가져가게 될 준연동형 비례의석도 21석보다 적게 된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민주당이 소위 ‘비례민주당’을 만들지 않더라도 현실적으로는 미래한국당이 준연동형 21석을 모두 가져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미래통합당은 자신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에게 정당투표를 완전히 양보한 상태입니다. 미래통합당은 정당투표 명부에서 빠지고 그 당의 지지자들은 미래한국당에 정당투표 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설계에서 ‘유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후보는 2번! 정당은 ○번’이라고 수십 번 들었다고 하더라도, 막상 투표할 때 이를 혼동하여 실수할 ‘지지자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지역구 후보의 정당과 같은 이름의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미래통합당, 미래한국당 모두 새로 생긴 이름입니다. 어르신들이면 더 힘들것입니다. 미래통합당에 투표했다면 38%였을 것이, 미래한국당에 투표하라고 하면 그보다 낮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실’이 발생하면 미래한국당의 준연동형 의석은 21석이 되지 않습니다.

미래한국당의 준연동형 의석이 21석이 되지 못할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표 1의 ‘그 외 정당’에서 3% 이상을 득표하는 정당이 나오는 경우입니다. 정당득표율이 3%인데 지역구가 9석 미만이라면 그 정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 참가하게 되어 미래한국당의 몫이 줄어드는 결과가 나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열거한 모든 경우의 수가 다 발생하지 않을 경우, 하승수 제안의 예측대로 미래한국당이 준연동형 비례 21석을 차지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설사 그런 결과가 나오더라도 앞서 언급했듯이 민주당의 제1정당 지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즉 미래한국당이 준연동형에서 21석을 얻는다고 가정해도 민주당은 심각히 고민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고민은 어디에서 올까요? 민주당이 예상과는 달리 지역구 의석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경우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표1에 따르면 민주당이 142석,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이 133석이므로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5석 이상을 미래통합당에 내주게 되면 원내 제 1당이 뒤집히게 됩니다. 민주당과 정의당을 합치면 153석이므로,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10석을 미래통합당에 내주게 된다면 정의당의 지원을 얻어도 143석 동석이 됩니다. 결국 민주당은 이러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보험’이 필요해집니다. 지역구 성적이 신통치 않을 것에 대비해 최대 30석이 주어지는 준연동형 비례대표 의석에서 가급적 많은 의석을 확보해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지역구 당선자는 없고 정당득표율만 있는 정당, 즉 민주당의 비례 위성정당을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미래통합당의 비례 위성정당 꼼수 전략에 맞서 민주당이 원내 제1당의 자리를 지키려면 사실 똑같은 전략을 구사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미래통합당을 똑같이 따라할 수 없어 전전긍긍하던 민주당에게 ‘시민사회’의 이름으로 제안 된 ‘진보개혁진영’의 선거연합정당 창당은 손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는 아주 고마운 해법입니다. 민주당이 직접 나설 수 없으니 시민사회를 앞세워 민주당 비례 위성정당을 창당하고 미래한국당의 꼼수 전략에 맞서겠다는 것이지요. 민주당의 원내 제1정당 지위를 지키기 위해 충성스러운 ‘시민사회’가 기꺼이 그 돌격대 역할을 떠맡은 것입니다. 민주당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선거연합정당 제안에 적극성을 보이는 데에는 한편에서는 그것이 최선의 대안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지역구 압승에 대한 자신감이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민주당 비례 위성정당은 민주당의 지역구 패배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번 총선은 ‘지역구 정당+비례 위성정당’의 형태로 범 자한당 빅텐트와 범 민주당 빅텐트가 맞대결하는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공직선거법 개정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사활을 걸었던 정의당에게는 이보다 더 불운한 상황이 없을 것입니다. 정의당은 민주당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돌파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당의 2중대로 살길을 모색할 것인가의 선택을 또 다시 강요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선거법 개정 이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민주당에게 이 길밖에 없는 것일까요? 위성정당 같은 꼼수를 쓰지 않고 ‘자한당 세력 제1당’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있습니다. 정당투표를 전략 투표(Tactical voting)로 하는 것입니다. 즉 원내/원외의 진보적 소수정당들에게 골고루 표를 몰아 주어 이 정당들의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미래한국당의 비례의석은 줄어들고 ‘자한당 세력 제1당’을 무조건 막을 수 있습니다. 선거 결과 민주당은 과거처럼 떵떵거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내 1당으로서 진보적 소수정당들과 힘을 합해 자한당 세력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애초에 하려고 했던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에도 맞는 것입니다. 백낙청 선생님이 그 점을 잘 지적하셨습니다.(https://bit.ly/2VCWnEM)​

 

주제 2: ‘선거연합정당’이 민주당의 위성정당이 아니라는 주장에 관하여

 

이 주제에서는 “선거연합정당은 ‘위장정당’도 ‘위성정당’도 아니며 ‘연합정당’”이라는 주장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먼저 하승수 대표가 “숱한 사례”가 있다는 ‘연합정당’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일단 개념상의 혼란을 피해야 합니다. ‘연합정당’과 ‘정당연합’을 혼동하면 안 됩니다. ‘연합정당’은 노선이 다른 세력이 연합하여 ‘하나의 정당’을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예컨대 정의당은 연합정당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어떤 정당이건, 정당이라면 다 연합정당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노선이 똑같은 사람만 있는 집단은 지구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개인적으로 소중한 존재들이고 모두 생각이 다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정당은 연합정당입니다.​

그러나 좀 더 엄격하게 ‘연합’ 정당의 의미를 규정한다면, 이전에 다른 정당, 다른 노선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정당을 만드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 전 운영위원장이 참여하고 있는 흐름을 ‘연합’정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크게 민주당 지지자, 녹색당 (지지자), 미래당 (지지자)가 포함되어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의 하 대표의 말은 큰 혼동을 일으킵니다. “연합정당은 기존에 활동하던 정당들이 선거 시기에 연합하는 방식이고, 숱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로 뉴질랜드의 Alliance와 스페인의 Podemos, 외국의 녹색당 등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는 연합정당의 예가 아니라 모두 ‘정당연합’의 예입니다. 여기서 정당연합은 각 정당이 그 정당의 고유한 정체성과 조직을 유지하면서 공동의 강령, 공동의 선거 행동을 위해서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뉴질랜드 Alliance는 New Labour Party, Democratic Party, Mana Motuhake, 그리고 녹색당이 연합하여 1991년에 출범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각 정당이 없어지거나 활동을 중단한 것이 아닙니다. 개별 정당은 그대로 남아있고 ‘정당연합’인 Alliance가 생긴 것입니다. 정당연합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공통점이 강해지면 기존 정당이 해소되어 ‘정당연합’이 ‘연합정당’으로 바뀌는 경우도 많습니다. 2000년에 New Labour Party를 해체하고 Alliance로만 활동하게 됩니다. 그리스 시리자도 마찬가지로 13개 정당연합으로 시작해 결국 하나의 정당으로 바뀌었습니다. 뉴질랜드 녹색당은 1993년 선거와 1996년 선거까지는 Alliance 정당연합에서 함께 행동했지만 1997년 Alliance에서 탈퇴하고 1999년부터 독자적으로 선거에 참여하여 현재 뉴질랜드 원내 4당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하승수 대표가 말한 2016년 스페인 포데모스의 ‘선거연합’도 ‘연합정당’이 아니라 Unidos Podemos라는 ‘정당연합’입니다. 전 세계의 녹색당은 한 번도 독자대오를 해소한 적이 없으니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 대표는 연합정당과 정당연합 사이의 중대한 차이를 모호하게 하고 필요에 따라 개념을 서로 혼동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연합정당’을 이야기하다가 슬쩍 ‘선거연합 정당’이라 말하며 ‘선거연합’으로 넘어가고, ‘선거연합’의 예로 ‘정당연합’의 역사적 사례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연합정당 필요성의 논거가 정당연합으로 뒷받침되는 꼴입니다.​​

혹시 연합이면 그만이지 그게 ‘연합정당’이면 어떻고 ‘정당연합’이면 어떤가하고 반문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실천적으로도 정치적으로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연합정당은 단일정당이기 때문에 과거의 당적을 버리고 연합정당의 당원이 되지만, 정당연합은 원래의 당적을 그대로 유지하고 정당(연합)에 또다시 가입합니다. 대한민국 선거법에 따르면 전자는 문제가 없지만, 후자는 이중 당적에 해당돼 이는 선거법 위반입니다. 따라서 하 전 위원장이 말하는 그 ‘선거연합’에 참여하여 공직선거에 나가려면 자기 정당을 일시적으로 탈당하고 연합정당에 들어가야 합니다. 출마하지 않는 하 전 녹색당 공동위원장은 탈당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 ‘연합정당’에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려는 어떤 정당의 당원은 기존 정당에서 일시 탈당을 해야 합니다. 만약에 그 ‘연합정당’이 성사되어 3% 이상을 얻고, 어떤 사람이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된다면 그는 이제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 연합정당에서 활동하던가, 아니면 ‘셀프 제명’ 형식으로 그 연합정당에서 제명해 준 다음 원래 있던 정당으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사실은 다른 선진국들처럼 우리나라도 선거법에 ‘정당연합’, ‘선거연합명부’ 등 다양한 형태의 선거연합이 허용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혼자서는 ‘진입장벽’(이것도 네덜란드처럼 아예 없애야 합니다만)을 넘기 어려운 군소 정당들이 연대하여 각각의 역사성과 정치적 정체성을 가진 자신의 정당을 깨거나 흔들지 않고도 공동의 강령을 만들고 힘을 합쳐 그 부당한 진입장벽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에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진보 정당이 몇 개 된다고 “분열로 망했다”는 말을 하는 것인지요? 그리스 시리자는 13개 정당 연합이었습니다. 유럽의 정치 선진국의 진보정당은 보통 10-20개 정도가 됩니다. 네덜란드는 원내에 진출한 진보정당만 추려도 기준에 따라 8개 혹은 6개로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역사와 전통, 가치와 문화가 다른 정당을 무리하게 통합하는 것이야말로 폭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도가 진보를 망하게 한 것이지, 각자의 정당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진보 정당들이 진보를 망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각 정당이 자기 정당의 고유한 색깔과 대오를 버리지 않고도, 공동의 대의 아래 모일 수 있는 ‘정당연합’, ‘연합명부’ 제도가 꼭 보장되어야 합니다. 진입장벽 철폐와 연합명부 제도를 다음 선거법 개정에서 꼭 이뤄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승수 제안 속의 ‘선거연합정당’은 정말 ‘연합정당’인가요? 새로이 생기는 정당의 당원으로 등록한다는 점에서는 연합정당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원래 있던 당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면 꼭 정당연합과 원리가 비슷해 보입니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이것이 바로 ‘위성정당’입니다. 정당연합이라면 각 정당은 존속하지만 선거에서는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선거는 연합해서 만든 선거용 정당으로 참여합니다. 연합정당이라면 각 정당이 해소되고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승수 제안대로 ‘선거연합정당’을 창당한다면, 민주당, 녹색당 등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독자적으로 지역구 선거도 합니다. 그리고 또 선거연합정당은 비례대표 선거에 참여합니다. 즉 이 ‘선거연합정당’은 정당 활동과 선거운동을 정상적으로 하고있는 민주당의 전폭적 지원 아래 오직 준연동형 비례대표 의석 배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정당이란 뜻이 됩니다. 더 나아가 그 정당을 만들기 위해서 자기 정당원을 ‘파견’했다가 선거후에 다시 ‘소환’한다는 것은, 그 정당이 하청계열사라는 것입니다.​

표 2: 정당연합, 연합정당, 위성정당 비교

이 정당은 미래한국당과 똑같이 ‘위성정당’입니다.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미래한국당은 한 정당에서 파견되었고, ‘선거연합정당’은 여러 정당에서 파견된다는 점이죠. 그런 점에선 전자는 ‘단일위성정당’, 후자는 ‘연합위성정당’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주제 3: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에 관하여

이제 마지막 주제로 자연스럽게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연합정당이야말로 “녹색당을 포함한 여러 소수정당의 원내진입도 이룰 수 있는 길”이라는 주장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됩니다. 범 자한당 세력의 1당 등극을 저지하고 범 민주당 세력의 1당 지위를 수호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기본 노선이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의견은 분분할 것 같습니다. 작년의 ‘조국 정국’에서도 진보정치의 딜레마는 확인된 바 있습니다. 이 기간 내내 검찰 비판과 태극기부대, 자한당 세력에 대한 비판에 집중한 사람들이 있고, 그에 반해 “서초동에도 광화문에도 서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차이이며, 국제적으로도 국내적으로도 뚜렷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대립입니다. 더 나아가 녹색당뿐만 아니라 범 민주당 세력의 일부로 자신의 정체성을 가두려 하지 않는 진보정당의 앞으로의 진로에 관한 핵심 문제입니다.​

녹색당이 추구하는 녹색은 어떤 녹색이어야 하는가? 녹색성장인가 탈성장인가? 녹색일자리의 증가인가 노동해방으로의 길인가? 지구를 걱정하는 중산층의 정당인가, 기층의 삶을 변화시키는 지구적 정당인가? ‘범 민주 연합’의 일원인가, ‘새로운 진보’를 만들어가는 주체인가? 이 문제는 너무나 중차대한 문제라 선거연합정당을 둘러싼 이 글의 주제를 훨씬 벗어나며 제 능력 범위 또한 벗어납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열린 논쟁 없이 진보정당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문제에 관한 공론의 장이 열리기를 희망합니다.​

원래의 주제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원외에 있던 군소 진보정당들이 원내로 진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원내로 들어가는 것이 진보정당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글을 이번에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들이 원내 진입이 싫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절대 원내파와 원외파, 정당파와 시민운동파의 대립이 아닙니다. 그렇게 호도하면 안 됩니다.​

많은 분들은 ‘우리의 힘으로 원내에 들어가야 우리가 힘을 쓸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힘’이 자기 당만의 힘이라면 금상첨화겠죠. 하지만 당 하나로 힘이 좀 모자라면, 힘이 약한 정당들이 모여 힘을 합쳐도 그것은 ‘우리의 힘’입니다. 예를 들어 A정당이 1.5% 정도 득표하고 0.7% 짜리 B당, 0.5% 짜리 C당, 0.3% 짜리 D당을 모아서 ‘선거연합정당’을 만들고 그 연합을 함께 이끌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힘입니다. 합리적으로 비례대표 의석과 순번도 배정하고 말이죠. 다른 국가들처럼 선거법상 정당연합이 보장되어 있다면 각 당을 유지하면서 정당연합(연합명부)을 형성하면 되지만, 한국에서는 이 방법이 군소정당들이 진입장벽을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정당연합도 쉽지만은 않습니다만, 자기 정당의 독자적 대오가 항상 유지되므로 정당연합의 강령과 방침이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탈퇴하면 그만입니다. 게다가 한국에서 정당연합은 불법입니다. 이에 반해 연합정당은 현재 선거법 하에서도 가능합니다만 최소한 공직에 출마할 사람들은 새로운 연합정당의 정당원으로 등록해야하고 그 연합정당이 정당법상 요건을 다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이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이룰 수 있다면 매우 보람 있는 성과가 될 것입니다. 민주당 지지 표를 적선 받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당의 연합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뜻을 모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연합정당’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위원장급 몇몇이 결정할 수 없습니다. 위성정당보다는 명분이 더 크지만, 그래도 자기 정당의 이름이 뒤로 빠지고 독자 선거가 없어지게 되므로, 각 정당별로 총의를 모으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는 계획입니다. 연합정당의 당명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연합정당의 비례대표 의석을 원 정당별로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준연동형은 어떻게 나누고 병립형은 어떻게 나눌 것인지, 선거 후 연합정당은 해산하고 각 정당으로 복귀할 것인지 아니면 연합정당 대오를 당분간 유지할 것인지 등을 미리 합의하고 문서화해야 합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하승수 제안은 ‘연합정당’의 개념을 모호하게 전달하고 있어 혼동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실상 민주당의 비례 위성정당이 추진되고 있는 것인데, 하승수 제안을 찬성하면서 ‘녹색당+미래당+기본소득당+노동당+민중당의 연합정당을 지지한다’는 댓글들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하 대표가 제안한 ‘연합정당’은 그런 것이 절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이 ‘연합정당이라 부르고 위성정당이라 이해되는’ 정당이 진보세력의 정치적 진출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궤변이 있습니다. 이건 간단히 숫자로 반박할 수 있습니다. 하승수 제안대로 비례 연합정당이 출범하고 민주당은 미래통합당과 똑같이 비례대표를 내지 않고 연합정당의 비례대표 명부만을 제출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연합정당의 준연동 비례의석은 13석이 되고 정의당은 7석에서 졸지에 4석이 되어 버립니다. 다시 말해 연합정당은 진보세력의 표를 빼앗는 기획입니다. 연합정당이 얻는 의석 중에 진보세력에 할애되는 의석이 있기때문에 ‘전체’ 진보세력의 표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협상안이 어떻게 될지, 민주당이 그 협상안을 제대로 지킬 것인지 등에 따라 다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정의당의 의석수는 줄어듭니다. 정의당이 이 ‘연합정당’ 출현으로 손해를 보지 않게 하려면 13석 중에서 최소 3석을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꼼수 위성정당이라는 오명을 같이 뒤집어 써야 하는 기획에 동참하는 대가이므로 3+α를 주어야 할 터인데, 그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표3: ‘선거연합정당’ 출현으로 인한 준연동 비례대표의석(30)의 변동​

결론적으로 비례 연합정당 제안은 미래한국당 표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정의당의 표도 줄어들게 하여 민주당의 표를 늘리는 기획입니다. 한 표라도 아쉬운 정의당 입장에서는 지금은 격렬히 반대하고 있지만, 이 연합정당이 현실화된다면 당초의 입장을 바꿔서 이 연합정당에 참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빼앗긴 표를 다 되찾아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래도 참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정의당은 선거법 개정이 자신에게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는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당의 비례 위성정당 창당을 코 앞에 둔 지금, 정의당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원외 소수 진보정당 입장에서 하 대표가 제안한 연합정당 참여는 한마디로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의석 1-2석을 얻기 위해서 민주당에 협조해서 정의당 표를 줄이는 것입니다. 정의당도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다른 원외 소수 진보정당을 도운 적은 없기 때문에 이렇게 못할 것은 없습니다. 결국 비례 위성정당이 생긴다면, 민주당으로부터 적선을 받아 민주당의 원내 제 1정당 유지를 위해 민주당의 충실한 2중대 역할을 수행하는 힘없는 진보정당끼리 준연동형 원내 의석을 놓고 서로 물고 뜯는 싸움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처럼 말입니다.​

(202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