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소득 전면 과세의 마지막 퍼즐 조각 금투세,
폐기 운명에 처하다(조혜경)
금투세 여야 합의,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금투세의 운명을 손에 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결단이 늦어지고 있다.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의 과세 형평성 제고라는 금투세 도입 명분은 쉽게 내다 버릴 수 있는 가벼운 문제가 절대 아니다. 더구나 금투세가 “민주당표” 정책으로 인식되는 탓에 민주당은 국민의힘처럼 손바닥 뒤집듯 할 수 없는 처지다. 지금 와서 금투세를 부정하면 스스로를 부정하는 꼴이 되고, 조세정의를 요구하는 금투세 민주당 지지자들과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모른척할 수 없어 정치적 부담감이 클 것이다. 그럼에도 이재명 대표가 금투세만큼은 국민의힘을 쫓아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여야의 일치된 당론으로 유예 또는 폐지될 가능성이 높다. 2020년 금투세 도입이 여야 합의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이 비웃음거리가 될 판이다. 당시 큰 잡음 없이 금투세 도입 입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뿐 아니라 국민의힘도 조세평등주의 원칙과 금투세 필요성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는 것도 양당에게 모두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가 되었다.
자본소득 전면 과세, 조세정책의 일관된 목표
우리나라 금융 세제의 역사는 정권을 가리지 않고 “소득있는 곳에 세금있다”는 조세정책의 기본원리에 따라 자본소득 전면 과세를 향한 일관된 흐름을 이어왔다. 1991년 비상장 주식 양도차익 과세에서 시작해 1996년부터는 이자소득과 배당소득을 다른 소득과 합산하여 누진세율로 과세하는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시행되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절박한 IMF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1998년 해외주식 양도소득세, 1999년 대주주 상장주식 양도소득세, 2001년 소액주주 상장주식 장외거래 양도소득세가 차례로 도입되었다.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3년에는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금액을 4천만 원에서 2천만 원으로 낮추었고, 상장법인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을 지분율 3%, 100억 원에서 2%, 30억 원으로 낮춰 과세 범위를 크게 확대하였다.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2014년에는 파생상품에 대해서도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입법이 이루어졌다.
금투세 원조는 박근혜 전 대통령
이처럼 공평과세와 조세정의는 민주당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비록 미완으로 끝났지만, 금투세의 원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부터 근로소득보다 자본소득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소신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집권 초기 2천만 원이 넘는 상장주식 양도차익 과세를 추진하려 했으나, 법안 발의도 못 하고 접어야 했다. 박근혜 정부가 실패한 금투세는 문재인 정부 들어 드디어 결실을 보게 된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금융투자협회가 합심하여 밀어붙이고 국민의힘이 군소리 없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금투세 도입이 확정되었다. 증세를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정치적 과정은 순탄하지 않고 타협의 결과가 항상 합리적이지도 않다. 실제로 우리나라 자본소득 과세체계와 세부적인 과세 방안이 조세평등주의 원칙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금투세 방안도 아쉬움이 많다. 그럼에도 2020년 금투세 여야 합의는 자본소득 전면 과세의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국민의힘의 선동을 쫓아가는 민주당
먼 길을 걸어온 자본소득 전면 과세가 실현되는 듯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의 금투세 폐지 선언 한마디로 일순간에 판이 뒤집혔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뜻을 따라 2020년 합의를 깨고 일찌감치 금투세 폐지를 당론으로 결정했다. 박근혜 정부 때의 증시 상황은 지금과 전혀 다르지만, 금투세를 무산시킨 반대 진영의 주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판박이처럼 똑같다. 상황이 변해서 지금은 안 된다는 주장을 수용할 수 없는 이유다. 민주당도 티를 내지 않을 뿐 정부 여당의 선동을 쫓아가고 있다. 막강한 화력을 지닌 금투세 폐지론자들의 공격이 무서웠던지 흘금흘금 눈치를 보던 민주당 의원들이 결국 지도부에 당론 결정을 위임하는 비겁한 결정을 내렸다. 폐지든, 유예든, 시행이든 이재명 대표 혼자서 그 후과를 감당해야 한다. 일인 독재 정당이라면 모를까 당론을 대표 혼자 알아서 결정하라는 의원총회의 결론에 말문이 막힌다.
거대 양당의 배신으로 꺾여버린 자본소득 전면 과세
이재명 대표가 어떤 결단을 내릴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유예와 조건부 폐지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유예든 조건부 폐지든 기약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현재 자본소득 중 비과세로 남아있는 것은 금투세 대상, 즉 소액주주의 상장주식 장내거래 양도소득뿐이다. 금투세가 도입되면 자본소득 전면 과세가 완성된다(법적 성격 논란이 있는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는 일단 논외로 한다). 그 마지막 퍼즐 조각을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한마음으로 내다 버릴 태세다. 소득원천이 무엇이든 과세 대상에 빈 곳을 남기지 않겠다는 조세평등주의의 대원칙도 같이 무너진다. 과세 자체를 무산시키려는 거대 양당의 행태는 민주화 이후 조세정책의 역사를 거스르는 명백한 정치적 퇴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