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가치평가, 회계법인의 타락과 단죄
한국은 회계투명성이 낙제점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회계투명성 순위를 보면 한국은 2017년 63개국 중 63위, 2019년 61위, 2022년 53위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지만 아직 멀었다. 기업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한 회계 투명성 확보는 우리 사회가 선진 국가, 신뢰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기업 회계의 경우 정부 당국과 회계법인의 집중적인 감시와 견제, 자정노력을 통해 많이 개선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외국계 사모펀드와 OO회계법인이 검찰로부터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사례를 보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형사소송에 휘말린 회계법인
“2018. 12. 10.경 외국계 사모펀드 컨소시엄으로부터 OO 소속 회계사들의 본건 보고서 발행과 관련된 민형사상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그 법률비용을 지급받기로 하였다.”
서울중앙지검이 2021년 1월 19일 OO 소속 관계자 3명과 대형 생보사의 재무적투자자(FI)인 사모펀드 관계자 2명을 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것에 대한 판결문 중 공소사실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국가법령정보센터에 공개된 내용이다.
자칫 보고서는 요구한 대로 쓸 테니 그에 따른 법률 리스크 일부는 의뢰인이 보장해달라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보고서 발행일이 2018년 11월 22일인 것을 보면 위 내용은 계약 내용으로 적시 됐기보다는 보고서 발행 이후 사후 대책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1심 판결문에서는 “회계사회는 (생략)이 사건 보고서 작성과 관련하여 민형사상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 법률비용을 지급받기로 하였다는 혐의사실과 관련하여 (생략) 민형사상 문제발생 시 법률비용을 보전받기로 한 계약조항은 가치평가업무 관련 용역계약에 통상적으로 포함될 수 있는 내용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므로, 회계사법 제15조, 제22조 등의 위반으로 인한 징계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치 없음’ 결정을 하였다”고 지적했는데, 이 내용이 전반적인 무죄 취지의 근거로 이용된 것 같다.
눈에 띄는 것은 해당 내용을 가치평가업무 관련 용역계약에 통상적으로 포함될 수 있는 내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부분이다. 과연 그럴까? 대형회계법인과 신용정보회사 소속 임원급 회계사들에게 이 같은 사례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이유일 수 있는지 의견을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말이 안 되죠” “회계사가 죽으려나 보네요” “이런 조항 있고 평가하면 세상 편하다” 등등이었다. 아직까지는 필자가 느꼈던 감정(?)과 유사하되, 무슨 근거로 회계사회는 저런 발언을 했을지 궁금했다. 웹서핑을 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회계사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서식자료 중 ‘외부감사계약서’ 문건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제14조(배상책임과 면책) ① 재무제표의 작성과 공시의 책임은 회사에게 있으므로 회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위조, 변조, 허위 기타 부정한 자료를 감사인에게 제공하거나 감사에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감사인에게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회사가 감사인에게 손해를 가하거나 위와 같은 회사의 잘못과 관련하여 감사인이 제3자나 국가기관으로부터 고소, 고발 또는 손해배상청구를 당한 경우 감사인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회사는 감사인이 책임을 면할 수 있도록 그 방어에 소요되는 일체의 비용을 부담하고, 감사인이 소송 결과 지게 되는 책임에 대하여도 회사는 감사인을 면책시킬 의무가 있다.
공소장과 판결문에서 인용된 부분과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위 조항에 따르면 회사는 감사인이 책임을 면할 수 있도록 그 방어에 소요되는 일체의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는 회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위조, 변조, 허위 기타 부정한 자료를 감사인에게 제공하거나 감사에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감사인에게 제공하지 않는 의뢰인, 여기에서는 회사의 부당한 행위를 전제로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OO이 외국계 사모펀드 컨소시엄에 보고서 발행과 관련된 민형사상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그 법률비용을 지급받기로 약정할 수 있었던 것도 사모펀드가 고의 또는 과실로 위조, 변조, 허위 자료를 제공하는 등의 사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결국 OO은 본인들이 작성한 가치평가보고서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음을 알고 있었고 그와 같은 오류의 원인은 의뢰인과의 공모가 전제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하면 과한 것일까?
같은 시기에 또 다른 외국계 사모펀드가 행사했던 풋옵션 행사가격 산출을 위해 작성됐던 OO측의 보고서는 치명적인 결함으로 인해 제출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다른 회계법인 보고서로 탈바꿈하는 것과 관련된 회계사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공개된 판결문 중 공소 내용에 따르면 OO은 2018. 10. 22.경부터 같은 해 11. 22.경까지 이 사건 가치평가업무를 수행했으며, 재판에서는 업무에 소요된 시간이 2백여 시간이라는 말이 나왔다. 회계법인이 해당 업무와 관련해 소비한 시간이 대단히 적고, 충분한 주의의무를 기울이기에도 부족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기업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한 회계 투명성 확보는 우리 사회가 선진 국가, 신뢰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미국에서는 2001년 에너지 운송 업체 엔론이 15억 달러(약 2조원 안팎) 규모의 분식회계가 드러나며 회사뿐 아니라, 당시 외부감사를 했던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마저 2002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똑같이 분식회계에 연루되었음에도 둘의 결과는 완전히 판이한 셈이다.
가치평가 오류, 실수인가 고의인가
아래에서는 (중략) 언론 보도와 재판을 방청하며 얻은 정보를 기초로 ‘치명적인 오류’ 두 가지를 이야기하겠다.
첫째, 결국은 기업가치평가를 상대가치 평가접근법으로 했는데 비교 기업의 주가 산정 시 그 기간을 기준일 기준 ‘직전 1년’으로 했다는 점이다. 판결문에서는 세 번 관련 내용이 나온다.
“상대가치 평가접근법(GPC) 비교대상회사로 삼성생명, 한화생명, 오렌지라이프, GPC 기타회사를 선정하고 위 회사의 2018. 6. 30. 종가 또는 직전 1년 주가 평균을 기준으로 가격배수를 산정하였고” “2차 초안에서는 GPC 평가방법에서 비교대상회사의 2018. 6. 30. 직전 1년 평균주가를 기준으로 가격배수를 산정하고” “GPC 평가방법의 경우 삼성, 한화, 오렌지라이프(GPC 기타회사 제외)의 2018. 6. 30. 직전 1년 주가 평균을 기준으로 가격배수를 산정”
주식가치평가에 있어서 평가인자 하나의 미세한 움직임도 결과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평가인자 중 하나인 주가를 사용할 경우 특정일(이 경우라면 기준일) 하루가 아닌 1개월 2개월 등등이 쓰일 수 있는데, 너무 기간을 넓게 하는 것도 또 다른 편향을 야기해 정보의 효용을 상실케 할 것이다.
법령 등의 사례를 찾아보면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 제7조(상대가치) 2항에서는 유사회사의 주가는 당해 기업의 보통주를 기준으로 분석기준일의 전일부터 소급하여 1월간의 종가를 산술평균하여 산정하되 그 산정가액이 분석기준일의 전일종가를 상회하는 경우에는 분석기준일의 전일종가로 한다고 기술한다. 또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63조(유가증권 등의 평가)에서도 평가기준일 이전·이후 각 2개월 동안 공표된 매일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거래소허가를 받은 거래소 최종 시세가액의 평균액이라고 했다.
필자의 경험을 얹어 보더라도 여러 가지 목적으로 주가를 산정할 때 1년이라는 긴 시간의 평균을 사용한 적은 없다. 1개월 혹은 2개월 평균치가 아닌 1년 평균치를 사용하였을 때 삼성, 한화, 오렌지라이프의 기준일 기준 과거 주가가 1년간 하락 추세였던 점을 감안하면 결과치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과대평가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평가기준일과 관련한 내용이다. OO은 보고서의 평가기준일을 2018년 6월 30일로 했다. 이는 실제 옵션 행사일이 2018년 10월 말인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부적절하다. 실제 비교대상 회사인 삼성, 한화, 오렌지라이프의 주가는 OO이 정한 기준일 2018년 6월 30일 이후 하락하는 추세였다. 여러 언론보도에 실린 내용과 대형 생보사 측의 주장에 따르면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판정부의 2021년 9월 판정에서 OO의 가치평가와 이에 따른 사모펀드의 주장은 옵션 행사일을 기준으로 가치가 산출되어야 하나 그렇지 않아서 기각됐다는 것이다. 가치평가에 있어 행사일에 근접한 기준일을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회계법인의 과오에 대한 책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며 OO의 과거를 언급해야겠다. OO은 과거 약 5조 원 규모에 달했던 한 기업의 분식회계 사태 한가운데 있기도 했다. OO은 해당 회사의 외부 감사를 하면서 “회계처리의 부정 내지 오류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감사범위 확대 등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와 더불어 분식회계를 저지른 사실을 파악하고도 감사보고서를 허위 작성한 혐의로 소속 회계사들이 기소돼 징역형의 실형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2001년 에너지 운송 업체 엔론이 15억 달러(약 2조원 안팎) 규모의 분식회계가 드러나며 회사뿐 아니라, 당시 외부감사를 했던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마저 2002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똑같이 분식회계에 연루되었음에도 둘의 결과는 완전히 판이한 셈이다. 이제라도 회계법인의 과오에 대해 엄격한 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다.
김경율 회계사
원문출처: https://m.lawtimes.co.kr/Content/Opinion?serial=184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