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율의 세상 돋보기]
“얼마를 원하십니까?”
“2 더하기 2는 얼마이냐?”는 질문에 수학자는 증명을 시도하고 회계사는 얼마를 원하냐고 되묻는다는 오래된 업계 농담이 있다.
이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는 최근 언론에 소개된 2015년 태림페이퍼 자진 상장 폐지와 관련한 주식매수청구 가격에 관한 재판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 대형 회계법인인 A회계법인은 애초 태림페이퍼가 주주들에게 제시했던 1주당 가격 3천600원이 적정하다는 보고서를 발행해 제출한다.
취재 과정에서 일부 안진회계법인이 작성한 자료를 살펴볼 수 있었던 필자로서는 몇 가지 의심이 들었다. 평가시점을 기준으로 과거 실제 실적치를 보건데 매출총이익률이 10%를 상회했으나, 가치평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미래 추정치 예측에서는 매출총이익률이 8% 대로 하락한다. 태림페이퍼는 폐지를 재활용해 골판지원지를 생산 및 판매를 하는 회사로 당시 중국 등 국제적인 영업환경 변화로 말미암아 매출 증대가 예상됐고 실제 A회계법인도 이에 따라 매출 추정치를 약 70% 내외로 증가한다고 기재했다. 제조업을 영위하는 회사에서 매출이 70% 신장하는데 매출총이익률이 현저히 감소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중략)
뿐만 아니라 미래의 영업현금흐름을 추정해 산출하는 주식가치에서는 설비투자계획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에 관한 과거의 실적치는 20~30억 원대였는데, 뜬금없이 130억 원으로 넣어 6배가 늘어나 곧바로 기업가치가 크게 떨어지고 결국 재무제표상 순자산가치보다 기업가치가 낮게 나오게 된다. 폐지 재활용 등과 관련한 규제 등으로 진입장벽까지 있는 회사에서 매출이 현저히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애초 회사가 제시했던 주당 3천600원이 맞다는 것을 입증해 주기 위해 여러 가지 손장난을 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향후 추정치를 기초로 한 기업가치 평가를 실제 시간이 경과한 후 실적치를 가지고 비교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타당한 것은 아니지만, 추정기간인 2017년 이후에는 매출이 예상만큼 신장했고 영업이익률은 20%를 상회했다. 결국 1심 재판부는 A회계법인의 주식가치평가보고서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주당 가격을 1만3천200원 가량으로 판결했다. 이후 2심 역시 소액 주주들의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7천600원으로 결정하고 지난해 대법원은 심리불속행기각으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굴지의 대형 회계법인이 만든 주식평가보고서 결과가 재판 결과와 두 배 넘는 차이를 보이며 배척당한 것은 창피한 일이고 저급한 맞춤형 보고서였음이 드러난 사례라 할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회사 지분 100%를 인수한 B사모펀드는 주당 4천300원을 배당받은 뒤 다시 매각해 수천억원 차익을 남겼다.
여기에 묘한 지점이 있다. B사모펀드와 A회계법인의 관계는 이번만이 아니다. 비록 올 2월에 있었던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기는 했지만, 지난해 12월 있었던 공판에서 검찰은 A회계법인과 B사모펀드의(정확히는 위 태림페이퍼서의 사모펀드가 일부 투자한 펀드다) 공모를 강조하면서 ‘투자자들이 목표 내부수익률 7.3%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37만6천원 이상의 가격이 나와야 한다고 사전에 계산한 내용이 담긴 이메일 등을 제시했다. 아울러 “자본시장의 파수꾼인 회계사들이 감시하고 점검해야 할 대상인 자본시장의 플레이어들과 짜고 자신의 책임을 저버릴 때, 이들은 자본시장의 위험한 곡예사가 된다”며 “이 피해자는 거래 상대방뿐만이 아니며, 이러한 건전성이 훼손되면 자본시장의 기초 질서도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A회계법인.
과거 대우조선해양의 5조 7천억원대 분식회계에 연루된 곳이기도 하다. 이만한 규모의 분식회계에 연루된 회계법인들은 그간 문을 닫고 사라졌다. 그런데 국회를 중심으로 분식회계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더불어 관행을 종료하겠다며 여러 입법을 했고 그런 결과로 말미암아 A회계법인은 삼성전자를 ‘지정’감사하고 있다. A회계법인은 최대 호황을 맞고 있는 셈이다. 이런 사실을 국회에 계시는 분들은 알고 계실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차 A회계법인의 이름은 안진회계법인이다.
김경율 회계사·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