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절한 협력과 오지랖 사이
전성인 | 전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이번 정부 들어 삼성은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한-미 관세협상이라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두고 이재명 정부와 삼성은 긴밀하게 협력했다.
그러나 정부와 삼성 간의 모든 ‘긴밀한 협력’이 다 개운한 뒷맛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커튼 뒤에서는 대단히 석연치 않은 일들도 일어나고 있다. 사안은 늘 그렇듯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와 관련된 것이고, 금융위원회 공무원 조직인 모피아가 개입되어 있다.
지난 11월7일 금융위 보험과는 몇몇 관련자들에게 간담회 소집 계획을 알렸다. 안건은 “계약자보호 관점의 생보사 일탈회계 관련 쟁점(금융위)”이었다. 안건 제목이 보여주듯 이것은 삼성생명 문제다. 일탈회계라는 난해한 회계용어가 현안인 금융회사는 사실상 삼성생명뿐이기 때문이다. 이 간담회에는 금융위, 금융감독원과 한국회계기준원의 담당자 외에 다수의 전문가와 업계 종사자가 참석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언필칭 “계약자보호 관점”과 관련해서 논의한다면서 정작 보험계약자나 그들을 대변하는 참석자는 단 한명도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업계 쪽 참석자는 부지기수다. 보험업 종사자, 생명보험협회, 삼성그룹 계열사의 회계 처리를 해주고 돈을 버는 대형 회계법인 임원 등 얼핏 헤아려 보아도 다섯 손가락을 넘는다. 가히 ‘삼성 관점에서 본 간담회’가 아닐 수 없다.
두번째 이상한 점은 금융위가 이런 간담회를 여는 것이 거의 불법이라는 점이다. 회계기준에 관한 업무는 금융위가 외부감사법 시행령 제7조 제1항에 따라 회계기준원에 위탁했다. 회계기준의 해석에 관해 논란이 있는 경우, ‘K-IFRS(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 질의회신 연석회의 설치 및 운영에 대한 합의서’에 따라 금감원과 회계기준원이 연석회의를 통해 최종 결정한다. 따라서 금융위는 이 사안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이 간담회는 결국 개최되지 않았다. 금융위가 갑자기 이 간담회를 취소(또는 연기)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처음에 간담회를 취소한다는 문자를 보냈다가, 나중에 취소가 아니라 연기라고 정정하는 등 정신없이 허둥지둥했다.
당연히 여론이 들고일어났다. 시민단체는 비판 논평을 내고 일부 언론은 보도를 통해 이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렸다. 급기야 이 사안은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회계 원칙은 준수해야 하지만, “실무자가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업무”라고 방패막이를 하면서 억지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왜 다양한 의견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편향된 의견을 청취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왜 하필이면 그 편향이 보험계약자 보호 쪽이 아니라 업계 이해 쪽이었는지, 또 정말 실무자가 윗선의 지시 없이 자발적으로 추진한 것인지 등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는 없었다.
그럼 이 해프닝은 도대체 누가 왜 촉발했던 것일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우선 ‘누구?’부터 생각해 보자. 모피아일까? 아닐 것 같다. 모피아 조직의 존폐가 걸린 금융감독체계 개편이라는 대선 공약이 아직 살아 있는 상황에서, 금융위 실무자들이 ‘먼저’ 나서서 ‘위원장의 해명이 필요할 정도로 눈총받을 짓’을 시작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성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이 경우 다음 문제는 ‘왜?’다. 일단 회사 차원에서의 재무적 유인을 찾기는 힘들다. 일탈회계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하더라도 삼성생명이 유배당 보험계약자에게 배당하는 돈은 변함없다. 유가증권 평가익은 어차피 배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배당 보험계약자에 대한 배당은 오직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서 실제로 이익을 실현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재무적 유인 외에 다른 유인이 있을 수 있을까? 한가지 가능성은 회계 담당자에 대한 제재 문제다. 당초 일탈회계 여부에 대한 금감원의 공식적 입장은 ‘경영진의 자율판단’에 맡긴다는 것이었다. 알아서 잘 해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일탈회계가 잘못되었다면, 이는 ‘과거 삼성생명의 경영진이 잘못 판단했다’는 뜻이 된다. 그럼 감리에 들어가게 되고, 담당자들은 제재 처분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제재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금융위에 먼저 접근해서 상황을 호전시키려고 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이제는 진실을 밝힐 때가 되었다. 이 사안을 누가 먼저 촉발했건 간에 삼성과 모피아가 부적절하게 협력하려다가 실패한 사안이었는지, 아니면 금융위원장의 말처럼 금융위 실무자가 단순히 일을 열심히 해보려고 했던 오지랖이었는지. 진실 규명에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원문: 한겨레, 2025.11.19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29998.html
